옛날에 쓴 글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오천명

한주환 2018. 4. 13. 19:50




우리 인생에서 만나는 사람은 대략 5천명이랍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 보셨나요?

전 지금까지 살다 보니 이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래 가진 않았지만.. 



중국 전국시대 때 초나라 태생인 유백아는 성연자로 부터 음악을 배웠다. 스승 성연자는 제자인 백아에게 수년 동안 음악 기초를 배우게 했다. 그런 다음 태산으로 그를 데리고 올라가서는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우주의 장관을 보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봉래의 해안으로 데리고 가서는 거센 비바람과 휘몰아치는 도도한 파도를 보여 주면서 바다와 비바람 소리도 들려주었다. 백아는 스승의 이러한 지도로서 비로소 대자연이 어울려 화합하는 음성과 신비하고 무궁한 조화된 자연의 음악을 터득하게 되었다. 이러한 수련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 백아는 저 위대한 금곡인 천풍조, 수선조를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백아에게는 입신 출세의 길이 열려 진나라에 가서 대부의 봉작을 받게도 되었다.

그러나 그의 금예가 도달한 참된 경지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음악가로서의 그의 불행이었으며, 견디기 힘든 고독이 아닐 수 없었다. 백아는 진나라에서 20여 성상을 보낸 다음 고국에 돌아와 자기에게 음악의 진경을 터득케 해준 스승 성연자를 찾아갔다. 그러나 오직 자신의 음악이 통할 수 있었던 유일한 스승은 돌아가시고 고금일장만 유언으로 남아 백아를 맞이해 주었다. 


백아는 몹시 상심하여 강을 따라 배를 저어간다.

때마침 언덕에는 가랑잎이 지고, 강을 따라 갈대 밭에는 갈대꽃이 만발하여 고독한 나그네를 더욱 수심에 젖게 하였다. 백아는 기슭에 배를 대로 뱃전에 걸터 앉아 탄식어린 거문고 한 곡을 탄주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스럽게도 어디선가 바람결에, 유백아가 뜯는 거문고의 탄식에 맞추어 어떤 사람의 탄식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이 깊은 가을 저녁, 넓고 적막한 강 기슭에서 누가 나의 탄식 깊은 거문고를 들어주었단 말인가? 


그때 백아 앞에 나타난 사람은, 땔 나무를 해 팔면서 사는 가난한 나무꾼이었다.

그러나 그는 땔나무를 하기 위해 산천을 다니며 평생을 사노라 자연의 음성과 자연과 교감하는 음악의 참된 경지를 알아들을 줄 아는 종자기라 사람이었다. 백아는 수십 년 만에 비로소 자신의 음악을 제대로 알아들을 줄 아는 사람을 만난지라, 거문고의 줄을 가다듬고 아끼는 수선조 한 곡을 뜯었다. 백아가 수선조를 다 뜯고 나자 종자기는 “참으로 훌륭합니다. 도도한 파도는 바람에 휘말려 넘실거리며 흘러가고 있군요”라고 말했다. 


백아는 이처럼 자신의 음악을 제대로 감상해 주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천풍조를 뜯기 시작했다. 종자기는 눈을 지그시 감고 천풍조를 다 감상하고 나서 “장엄하고 아름답기 그지없군요. 가슴속엔 해와 달을 거두어들이고 발아래는 무수한 별 무리를 밟고 서 있군요. 높으나 높은 상상봉에 의연하고 도저하게 서 있군요”라고 말하지 않는가. 어찌 더 이상 주고받을 말이 필요하단 말인가? 두 사람은 그대로 서로를 느끼고 교감할 수 있는 오직 한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닌가. 


유백아와 종자기는 다음 해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때가 되어 백아는 종자기를 찾았으나, 종자기는 병들어 죽고 없었다. 백아는 종자기의 무덤을 찾아가 통곡을 하였다. 그리고는 칼을 들어 그의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다.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오직 하나뿐인 그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다시 거문고를 뜯어 무엇 하느냐고 백아는 슬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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