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며느리의 일생 페데라프

한주환 2018. 8. 26. 10:41

아줌마 B는 주변에 팔자 좋은 여자라고 불리운다. 



치과의사인 남편은 날이 맑으면 골프 치라고 십만원을 주고, 날이 흐리면 고스톱을 치라고 오만원을 준다. 지방에서는 십만원이면 골프 한 게임 치고 오기 딱 좋다. 매일매일 용돈을 받아쓰는 아줌마는 남편이 얼마 벌어 오는지, 얼마 저금하는지 모른다. 공과금이나 세금도 남편이 해결한다. 장을 볼 때에도 같이 가서 남편이 지불한다. 딸내미 결혼 시킬 때에도 남편이 다 해결한다. 아줌마 B는 말한다. 저 사람은 남의 침 맞아가면서 벌은 돈 매일매일 은행에 입금하는 게 취민데 그걸 내가 어떻게 막아.


아줌마 B가 팔자 좋은 여잔지 아닌지는 세상 사람이 다 모르고 그 집 딸만이 안다. 

아줌마 B 에게는 시아버지 K가 있다. 구십이 가까운 K는 한약을 장복해서 인지 아직도 정력이 좋은 사람이다. K는 젊을 때 조강지처를 버리고 바람을 여러 번 피웠다. 처음 바람을 피웠을 때 시어머니 K'는 쓰러졌다. 아줌마 B는 시어머니를 병 구완해서 일으켜 세웠다. 몇 년 후 시아버지 K가 두 번째 바람을 피웠을 때, 시어머니 K'는 일어나지 못했다. 누운 채로 8년을 살았다. 현대 의학의 승리였다. 시어머니 K는 소변은 볼 수 있었으나 대변은 볼 수 없었다. 



대변을 보기 위해선 아줌마 B가 장의 위부터 아래까지 흐물흐물한 배 껍질을 손으로 주물러서 치약 짜내듯이 아래로 짜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똥 구멍까지 똥이 치 받치면 손가락으로 변을 파냈다. 변을 파내기 위해서는 장갑도 안 낀 며느리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필요했다. 얇은 비닐 장갑만 껴도 손가락이 항문에 들어 가질 않았다. 이틀에 한 번은 파내야 변이 굳지 않았다. 8년후 시어머니 K'는 사망했다.



아줌마 B에게 시아버지 K를 미워하느냐고 물어보면, 그런 것도 이제는 없다고 한다. 다만 늘상 똥 냄새가 빠지지 않던 자기의 희던 손가락 이야기는 한다. 그리고 시아버지 K를 진심으로 미워했던 여러 순간을 가끔 이야기하기도 한다. 시어머니가 중풍인지 뇌졸증인지로 쓰러진 다음, 시아버지 K의 친구들이 K를 찾아오면, 평소에는 시어머니 방에 기웃거리지도 않던 시아버지가 굳이 시어머니를 들추고 똥 구멍에 그 굵은 손가락을 넣어 똥 빼는 시늉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환자는 아프다고 소리도 못 지르고, 똥 구멍은 다 긁혀서 몇 날을 고생하는데, 자기 친구들 앞에서는 마치 자기가 천하의 애처가인 양, 비운의 주인공인 양, 병 구완의 화신인 양 굴던 모습이 가장 얄미웠다고 한다.


시어머니 K'가 사망한 후 시아버지는 여자 K"와 결혼해야겠다고 했다. 여자 K"와 결혼할 수 없다고 자식들이 반대하자 시아버지 K는 굶기 시작했다. 정말로 굶었는지 숨어서 뭘 먹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단식 일주일째 자식들이 손을 들었다. 여자 K"는 시어머니 K"가 되었다.



시어머니 K"는 위암에 걸려 죽었다. 위암 뒤끝은 아줌마 B가 구완했다. 위암의 병 구완은 뇌졸증처럼 길지는 않았다. 시어머니 K"를 묻고 돌아오는 날, 시아버지 K의 친구들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자네 새 장가 들어야겠네? 시아버지 K는 이제 장가는 더 안 갈 거라고 했다.



장가를 더 안 갈 거라는 시아버지 K의 말은 참말이었다. 장가를 가진 않고 내연녀 K"'를 두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이제 잠은 내연녀의 집에 가서 자고, 아침과 저녁은 아줌마 B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다. 내연녀 K"'는 간염 보균자라고 한다. 아줌마 B는 내연녀 K"'를 걱정한다. 간암이라도 걸리거나 혹은 간염이라도 옮겨 올까봐. 칠십이 가까운 나이에 시어머니 병 구완 세 번은 도저히 못하겠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아줌마 B에게 부지런히 골프를 쳐서 체력을 길러두시는 게 좋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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