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아줌마 C 페데라프

한주환 2018. 8. 26. 07:14

는 아줌마라고 하기 뭐하다. 

노처녀라 해야 할지, 돌싱이라 해야 할지, 아줌마라 해야 할지, 본인은 그냥 편하게 C씨라고 부르라고 한다. 




아줌마 C는 젊었을 때 결혼을 한 번 했다. 오래전에 홀로 된 C씨의 어머니 B씨는, 하던 유치원 사업이 어렵자, 학벌 좋고 인물 좋은 딸내미를  부잣집에 급히 시집 보내서 급전을 좀 돌렸다. 딸을 팔아넘긴 건 아니었다. 신랑감 역시 인물 좋고 학벌도 빠지지 않았으니까.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 여행지에 갔는데, 첫날 밤을 치러야 할 신랑이 없어졌다. 신랑은 호텔 로비에서 웬 늘씬한 여자와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인사해, 내 여자친구야."



신랑은 원래 깊이 사귀던 이혼녀가 있었는데 집안에서 반대를 하니, 집안에서 원하는 여자와 일단 결혼을 하고, 크게 파토를 내기로 한 것이었다. C는 그 길로 짐을 싸서 친정으로 돌아왔다. 결혼 신고를 하지 않았으니 결혼했다고 할 수도 없고, 결혼식을 올렸으니 노처녀라고 할 수도 없다. C는 위자료를 많이 받고 이혼을 했다. 결혼 신고를 하지 않았으니 이혼을 했다고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C는 친정과 절연하고, 해외에서 석사도 하나 따고, 해외에서 일도 좀 하고, 남자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다시 결혼할 필요를 못 느꼈다. C가 아줌마 C가 되었다고 느낀 것은 사십 중반이 넘어가서였다. 몰려드는 남자 중에서 남자를 고르던 시기가 지나자, 더 이상 쉽게 원하던 남자와 사귈 수 없게 되었다고 느꼈다. 돈은 있었다. CD에 넣어둔 돈의 이자만 해도 충분히 혼잣 몸이 먹고 살고 남았다. 쇼핑 중독에 걸려보기도 했고 폭식을 해보기도 했다. 피아노도 배워 보고 테니스도 배워 봤다. 하고 싶은 일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왜 내가 살아야 하나를 생각했다. 푼 돈 벌자고 일에 그렇게 아둥바둥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왜 미국에서 그러고 있느냐며, 한국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느냐며 오랜 친구가 한국에서 불렀다. 한국이 재밌긴 뭐가 재밌는지, C는 모르지만 일단 한국에 들어갔다. 돈텔 마마에 가자고 친구가 불렀지만, 이미 돈텔 마마에 가기에도 C는 나이가 좀 많았다. 호스트바에 갔더니, 어린 놈들의 침 냄새가 고약했다. 동대문에 가서 옷 좀 사고, 찜질방에서 땀 좀 빼고, 한약방에 가서 침 맞고, 맛사지 방에서 경락 받자 한 달이 그럭저럭 지나갔다. 목욕탕에서 때 밀어주는 아줌마를 보다가, 그제서야 아줌마 C는 친정 엄마 생각이 났다. 오랜만에 연락한 친정에서는 깜짝 놀랄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아줌마 C와 나이 차가 나는 남동생 부부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었다. 홀로 된 친정 어머니가 굴리던 유치원은 작파하고 손주 C'를 기르고 있었다. 유치원을 이제 막 다닌다는 조카 C'는, 갑자기 부모를 잃어서인지 분리 불안을 겪고 있었다. 친정 어머니는 그새 폭삭 늙어 있었다. 혈육이라곤 아줌마 C와 손주 C'뿐인데, 아줌마 C와는 연락이 안되니 손주 C'에게 모든 걸 올인하고 있었다. 영어 유치원에서 조카 C'가 무슨 발표회를 하니, 나보다 젊은 네가 대신 가 달라고 친정 어머니 B는 부탁했다. 



조카 C'는 밤 무대 가수 같은 반짝이 옷을 입고 춤추고 노래했다. 아줌마 C는 준비 없이 간 자신을 후회했다. 잘 차려 입은 학부형 아줌마들은 모두 비싼 가방을 들고 있었고, 아저씨들은 얄상한 캠코더와 렌즈가 무거운 DSLR 카메라를 들고 제 자식들의 잘난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아줌마 C는 어딜 보나 미국 촌 년이었다. 조카 C'는 울음을 터뜨릴 듯 했다. 아줌마 C는 오래간만에 살 맛 나는 적의와 경쟁 의식을 느꼈다. 



그 길로 아줌마 C는 백화점에 가서 루이비통 가방을 질렀고, 청담동 며느리식 정장을 질렀고, 캠코더를 샀다. 그리고 유치원의 모든 행사마다 C'를 위해 참석했다. 머리를 새로 하고 단정하게 옷을 입고 최고급 가방을 들고. 근 몇 년 동안 돈 쓰는 게 그렇게 즐거워본 적이 없었다. 요즘 아줌마 C는 풀잎 같은 조카에게 푹 빠져서 엄마인 척 하고 지낸다. 십 년 정도 나이 차이가 지는 젊은 엄마들 옆에서 기 싸움 하는 게 그렇게 재미지다고 한다.



미국 촌 년! 밴쿠버 조선족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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