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청국장과 같은 냄새 페데라프

한주환 2018. 4. 4. 15:52




"점심 먹으러 가는 길이면 나 좀 데려가 줘."


과장님이 날더러 하는 말이었다. 사십 줄의 유부남이 여직원과 단 둘이서 뭐 하러 점심을 같이 먹는단 말이냐. 나는 얼굴을 찡그리진 않았지만 웃지도 않았다. 과장은 그러나 자기 나름으로는 상냥하게 말한다고 노력하는 듯, 낮은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말했다.

"내가 밥 살께 나 좀 데려가 줘."



과장은 간곡해 보였다. 사내 메신저에 바로 "부장님이 청국장 콜. 12시까지 한씨 청국장 집합"이라는 메시지가 뜬 직후였다. 과장은 메신저에 "직원과 상담 있어 전 빠집니다" 라고 다다닥 치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상사가 저렇게 쳐다보면 좋은 말 할 때 순순히 들어 먹으란 소리다. "'매드 포 갈릭' 괜찮죠?"하고 나는 말했다. 기왕 지사 얻어 먹을 거면 뽀지게 먹기나 하자는 심산에서였다. 과장은 희색이 만면해서 말했다. "그럼 그럼. 시키고 싶은 거 뭐든 시켜!"
마늘 냄새가 가득한 '매드 포 갈릭'에서 나는 궁금증을 풀었다.

"과장님 뭣 땜에 저랑 점심을 먹자시는 거예요? 부장님이 싫으세요?" 
"부장님이 싫은 게 아니라, 청국장이 싫어."
"청국장이 싫으세요? 마늘은 괜찮고요?"
"자네도 내가 미국에서 공부해서 빠다 먹은 티 낸다고 생각하나?"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미국에서 오래 공부를 했어. 공부할 때는 대개 그렇듯이 싸구려 아파트에 살았지. 정부가 보조해 주는 월세 사백달러 짜리 아파트야. 우리 아파트 옆에는 백인 할아버지가 사셨는데, 할아버지가 아주 선하셔. 아침에 마주치면 굿모닝하고 웃어주시고 눈이 오면 우리 아파트 앞까지 쓸어주시고. 머리가 하얀 신사인데 영어가 안되는 학생들 대화 상대도 해주시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그리터 (정문에서 맞이해주는 사람)도 하신다더군. 베레모를 쓰고 산책할 때면 한 폭의 그림이야. 국가에서 연금 나오는 걸로 적게 벌어 적게 쓰고 산다 하더라구 . 





그런데 우리 집하고 할아버지는 좀 문제가 있었어. 한국 음식만 진하게 먹었다 하면 할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들기셔. 특히 오징어만 구웠다하면 할아버지가 득달같이 달려와. 그런데 마누라쟁이가 임신을 하니까 이게 문제인거라. 입덧하면 불로초라도 캐서 바쳐야지, 내 자식 품은 여자한테 빈 입 다시라 할 수 있어? 


"그게 청국장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울 집 싸모님이 입덧을 하니까 갑자기 한국 입맛이 도졌는지, 청국장에 밥 좀 비벼 먹어봤음 소원이 없겠다는 거야. 한인 마켓도 두 시간 거리에 있는 깡촌인데 어디서 청국장을 구해. 하도 뭐라 하니까 처가에서 청국장을 소포로 보내왔네. 한소끔 끓였더니 옆집들에서 난리가 났어. 이게 뭐냐고. 이게 무슨 냄새냐고. 특히 그 백인 할아버지가 얼굴이 시퍼렇게 되어서 집 문을 두들기는데 얼마나 속으로 쫄리던 지. 


= 롸튼 롸튼 롸튼! 뎃 바디! 


사람 썩는 냄새가 난다는 거야. 마누라는 입에다 한 국자 쳐 넣고 못 삼키고 울어. 죄송하다고, 꾸벅꾸벅 사죄를 해도 그 할아버지 눈길은 파랗게 이글이글 타고 있더군. 사람 하나 잡아먹을 기세더라고. 





두어 달이 지났어. 마누라 쟁이는 기어이 못 참고 두어 번 더 청국장을 구해다 먹는 눈치였어.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 냄새 잡는 스프레이 뿌리고, 옆집 할아버지가 쫓아오면 침실에 들어가 못들은 척 하는 거지. 나는 늦게까지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모른 척 했지만, 마누라 쟁이는 그 할아버지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듯 했어. 

마누라가 임신 육 개월 되던 때였나? 아이고 그 날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집 안팎으로 청국장 냄새가 진동을 하는 거야. 한밤중에도 냄새가 어찌나 독하던지 내가 다 민망할 지경이었어. 집에 들어오자마자 마누라부터 잡았지.  

여보, 당신 또 청국장 먹었어? 냄새 빼야지. 옆집 할아버지 또 쫓아오시면 어쩌려고."





"' 나 청국장 안 먹었어. 왜 날더러 그래!"


호르몬 분비가 최고조이던 마누라는 쨍 하니 소리를 질렀지. 마누라 말이 맞는 것 같긴 한데 아침이 되어도 청국장 냄새가 가시질 않아. 아 정말 기억에서 사라지질 않아. 그 한여름 인디애나의 더위. 매일매일 끈끈하게 몸에 스며들던 청국장 냄새. 연구실에 가면 사람들이 슬슬 나를 피할 정도였지. 





이 주 쯤 지나니까 교회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왔어. 그 백인 할아버지가 몇 주 동안 교회를 나오시질 않았대. 경찰이 와서 아파트 문을 열었어. 욕실에서 할아버지 시신을 발견했지. 뇌진탕이 원인이었다더군. 그 사람들 일 처리 참 신속하고도 냉정해. 거실에서 할아버지 시신 치우고, 장례식하고 화장하는데 일주일도 안 걸리더만. 교회 사람들이 전해주는데, 그 할아버지는 한국전 참전 용사였대. 술이 거나하면 한 여름의 강원도 이야기를 가끔 하더라는군. 한여름 강원도 홍천, 거기서 썩어가는 시신들 냄새...미칠 것 같은 뎃 바디 냄새 말야.  냄새를 맡는다는 건, 냄새 입자가 코 안의 점막에 와서 붙는 거라고 하지. 그 냄새는 그 할아버지의 일부가 된 거야. 


자네 그거 아나? 청국장 띄우는 세균은 시신에 있는 세균과 같은 종류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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