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건만 제때 끼니를 챙겨 먹지도 못할 아들을 위해 뜨거운 여름날 고깃국을 먹자고
식당을 찾아 들어간 어머니입니다.
설렁탕 두 그릇을 시키는 시인의 어머니 모습이 보입니다.
어쩌면 주머니 속에 꼬깃 꼬깃 넣어둔 지폐를 재빨리 속으로 셈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잠시 후 식당 주인은 쟁반에 설렁탕 두 그릇을 담아 내왔을 테지요.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 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 하며 다가왔습니다.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먹기만 하면 되는데 어머니는 대체 뭐가 더 필요했던 것일까요?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서 짜졌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식당 주인은 흔쾌히 국물을 가져다줬는데 문제는 지금부터 입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아하! 결국은 이거였습니다.
다 큰 자식에게 설렁탕을 한 술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마음에 식당 주인에게 거짓말을 한 겁니다.
시인은 몹시 난감해졌습니다.
어머니 돈으로 밥을 얻어먹으니 자식의 맘도 맘이 아니겠지만, 무엇보다도 식당 주인에게 들킨다면?
분명 능력 없는 자신을 조롱할 테지요.
그런 자식의 맘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머니는 서둘러 자식의 설렁탕 그릇에 국물을 더 부어줍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국물을 그만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 댔습니다.
거짓말을 한 게 죄 들통이 났는데도 어머니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저 아들 투가리에 뽀얀 국물 더 부어주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체면이 서지 않는 아들은 눈치 보느라 바쁘고, 분명 힐끔 거리는 아들의 시선이 주인 남자의 시선과 얽혔겠지요.
그 얕은 수가 발각되었으니 그만 두시라고 어머니에게 일러주고 싶지만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어머니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분입니다. 아들이 할 수 있는 의사표시는 투가리를 툭 부딪치는 것 뿐입니다.
쨍그랑도 아니고, 탕탕하는 소리도 아니고, 툭! 하는 소리입니다.
어쩐지 가슴 뭉클해집니다.
세련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그악스럽지도 못하면서 거짓말을 해서라도
제 자식을 챙기려는 어머니의 촌스럽고 투박하고 서툴기 짝이 없는 모성애를 소리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 ‘툭’이라는 소리일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난감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이런 처지를 불러온 것이 결국은 자신의 무능력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괴감과 자책감이 뒤엉켜 그는 하릴없이 깍두기만 우적우적 씹어댑니다.
그걸 씹으면서 그의 시선은 어디로 향해 있을까요? 참으로 정처 없이 식탁 위를 헤맸을 겁니다.
아들의 이런 곤란함을 주인은 알았을까요?
아니면 어머니의 그 사랑을 이해해주었을까요? 식당 주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깍두기 한 접시를 더 가져다줍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 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다 큰 아들은 그날 지독하게도 굵은 땀을 흘렸을 테지요.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다는 이 표현은
읽고 또 읽어도 기가 막힙니다.
소리 내 울 수도 없고, 민망하다며 어머니에게 대놓고 짜증 낼 수도 없는 일, 어머니의 애 끓는 사랑에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하는 아들의 몸짓은 고작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내는 동작 뿐입니다. 그리고는 괜히 중얼거립니다.
눈물은 왜 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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