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수 선생 페북에서 복사한 글이다.
햇중년 여성이 데이트 중이었다. 감정 표현이 많지 않은 편인데다 그렇게 살 형편도 못됐는데 한계령 어느 지점에서 신음소리를 내듯 감탄했다고 했다. 그렇게 눈물나도록 마음에 박히는 풍광을 그토록 편안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나.
차를 세울 데가 없는 곳이라서 최대한 천천히 내려갔는데 목을 꺽으면서까지 뒤를 돌아보는 여인을 위해 상대남이 어느 순간 어렵게 차를 돌려 다시 그 감탄의 지점으로 데려갔단다. 들으며 현기증 나도록 꾸불꾸불한 한계령 길이 떠올랐고 내려갔던 길을 연어처럼 다시 거슬러 오르겠다 결심한 사내의 심경을 헤아렸다.
잘 보이고 싶은 전략적 배려였든 연심이었든 그 순간 여인은 내 감정이 생전 처음, 온전히 인정받았다는 느낌에 녹을 만큼 황홀했다지. 그때의 느낌을 전하는 여인의 목소리와 눈빛에 숨길 수 없는 황홀감이 넘쳐 흘러서 모를 도리가 없었다.
사는 일에서 앞으로 잘 살 수 있을 거 같다고도 했다. 그 연애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에 상관없이 축복하고 감탄해줬다. 내가 존재 자체로 온전히 인정받고 존중받았다는 경험을 한번이라도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삶이 달라진다는 걸 숱한 경험칙으로 알게 돼서다. 여기까지 복사했다.
여기를 지나는데 콧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있었다. 피던 담배도 끄고 창문을 내리고 콧노래를 부르며 좋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정말 잘 데리고 왔네 싶었다.
한국사람이 하던 위 사진 휴게소는 문을 닫고 헐어서 없었다. 2005년에 지날 때 아들 둘이 운영하는 휴게소였는데 2022년에 갔더니 없어졌다.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경험칙은 항상 맞지 않는다. 하나도 그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