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3.1운동 이후 일제에게 잔뜩 쫄아서 피안의 세계로 도망간 역사, 신사 참배하라고 하니 신사 참배하고, 예언서나 묵시록 등은 읽지도 말라고 하니 안 읽고, 전쟁 물자 대라고 하니 교회 종 갖다 바치고, 전투기도 헌납하고, 끝내 모든 교단을 통폐합하라고 하니 통폐합하고. 3.1운동 이후의 .. 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2019.03.03
틀렸다 나태주 돈 가지고 잘 살기는 틀렸다 명예나 권력, 미모 가지고도 이제는 틀렸다 세상에는 돈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고 명예나 권력, 미모가 다락같이 높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요는 시간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허락된 시간 그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써 먹느냐가 열쇠다 그리고 선택이다 내 좋.. 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2019.02.27
꽃샘 추위 이종욱 살아서 갚을 빚이 아직 많다 새벽 공기를 돌려야 할 집이 아직 많다 죽어서도 물음을 묻는 무덤이 아직 많다 우리 발에 올가미가 걸릴 때 우리 목을 억센 손이 내리 누를 때 마주 보는 적의 얼굴 가거라 한치도 탐하지 말라 몇 점 남은 우리 몸의 기름기 겨울의 마지막에 아낌없이 불을 당.. 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2019.02.25
작은 당부 김왕노 채송화 피면 채송화만큼 작은 키로 살자. 실 바람 불면 실 바람만큼 서로에게 불어가자. 새벽이면 서로의 잎 새에 안개 이슬로 맺히자. 물보다 낮게 허리 굽히고 고개 숙이면서 흘러가자 작아지므로 커지는 것을 꿈꾸지도 않고 낮아지므로 높아지는 것을 원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2019.02.15
For Rosan Mithar -- 그 날 아침의 조용한 소멸 로잔 할머니가 먹고 마시기를 거부한 지가 두 주가 지났다. 보통은 환자가 그런 상태가 되면 우린 가족에게 연락을 한다. "아들한테 연락했는데 멕시코 여행 가서 한 달이나 있어야 돌아온 데. 손자들이 있긴 한데 전화번호가 바뀌었 데" 우린 알고 있었다. 할머니의 음식 거부는 가족을 향.. 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2019.02.03
나이 김재진 나이가 든다는 것은 용서할 일보다 용서 받을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보고 싶은 사람보다 볼 수 없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기다리고 있던 슬픔을 순서대로 만나는 것이다. 세월은 말을 타고 가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마침내 가장 사랑하는 사.. 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2019.02.03
For Rosemary Morrison -- 꽃은 리스로 오래 남을 수 있죠 난 그중 목이 푹 꺾여 앞으로 고꾸라진 노란 장미를 손으로 가다듬어 세우면서 바로 세우면서 생각했다. 할머니의 노란 장미 리스가 방문에 걸린 그 주, 기침 감기가 밴쿠버 일대를 강타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기침을 안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뉴스에 의하면 캐나다 북부의 만년 .. 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2019.02.01
아줌마를 위하여 윤진화 배추를 사서 김치를 담그자. 칼을 긋고 벌린다. 은밀한 속살에서 원시 림의 향기가 살아 다른 몸으로 전이된다. 이 참을 수 없는 원 죄를 꼭 붙들라, 누군가 성호를 긋고 있다. 배추를 벌리고 소금을 넣으며 떠올리는 야릇한 경계, 신을 모방하는 손길. 대개 배추는 속부터 간이 들어야 제 .. 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2019.01.27
화양연화 김사인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나가지 덧 없다는 말처럼 덧 없이, 속 절 없다는 말처럼이나 속 절 없이. 수염은 희끗해지고 짓궂은 시간은 눈가에 내려앉아 잡아당기지. 어느덧 모든 유리창엔 .. 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2018.12.30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정희성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 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2018.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