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쓴 글

이렇게 살고싶었다

한주환 2018. 1. 23. 02:23


마태운씨라고 문화일보 기자 하다가 시드니서 스시집하는 분 글이다.



또 다른 단골 호주인 부부 중에 남편이 목수인 40대 후반의 부부가 있다일 년에 서너 번 정도 우리 식당에 오므로 단골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그래도 매년 꾸준히 온다그들이 자주 못 오는 이유는 시드니에서 400 km 정도 떨어진 소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그들이 뜸하기는 해도 우리 식당에 오는 것은 원래 시드니 살 때 살던 집이 우리 식당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그 부부는 시드니 집을 팔거나 세를 주지 않고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해주고 있고 방 한 칸은 비워두고 있다가 자기들이 시드니 올 때마다 묵는다.





그들이 시드니를 떠나 소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긴 것은 시드니가 너무 복잡하고 시끄럽고 상업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다남들은 시골에서 살다가도 자식 교육을 위해 어떻게든 시드니로 오려고 하는데 그 반대이다시골 소도시에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그들의 자녀들도 시드니 올 때 데려오는 데 항상 밝고 건강한 표정이다목수 부부를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없을지 몰라도 이들 부부 역시 인간적으로 아주 점잖고 겸손하다음식도 소박하게 시키고 남김없이 깨끗하게 먹는다올 때마다 항상 나에게 안부를 묻고 호주 생활에 대해자식들에 대해 자상하게 묻고는 내가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들어준다.



언제나 타인을 배려한다는 느낌을 주는 부부였다우리 식당에 자주 오는 노숙자가 한 명 있었는데 항상 음식을 포장해서 식당 앞 길거리 벤치에 앉아서 먹었고 나는 그에게 음식값의 반만 받았다마침 우리 식당에 왔다가 식사를 하고 나가면서 벤치에 앉아 밥을 먹는 그를 본 목수 부부가 그를 데려가 그들 집의 방 한 칸을 내주었다그 사실도 나중에 노숙자가 나에게 말해줘서 알게 된 것이다.




한 번은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면서 부인이 시골에서 직접 만든 잼이라며 나에게 잼이 든 병이 담긴 작은 종이백을 선물한 적이 있다그들 부부가 식당을 나가고 나서 종이백 안을 들여다보니 잼이 든 병 말고도 편지봉투가 하나 들어 있었다편지에는 ‘항상 열심히 일하는 당신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있을 것’이라고 씌여져 있었고 200달러 수표도 동봉돼 있었다.



황급히 뛰어나가 아직 차에 오르지 않은 부부에게 수표를 흔들며 잘못 넣은 것 같다고 말했더니 부인이 ‘그 수표는 내가 주는 게 아니라 하느님이 주라고 한 것’이라며 한사코 받기를 거절했고 남편은 빙그레 웃고만 있었다그들 부부가 내게 수표를 준 것은 왜일까 생각해봤는데 답이 나오지 않았다이방인인 내가 호주 땅에 와서 매일 밤 11시까지 일하는 것이 안쓰러워 보였을 수도 있고 정말 하느님이 주라고 했을 지도 모르겠다.



몇 달 전 그들 부부가 식당에 왔을 때 부인이 북한에서 만든 영어 팜플렛을 내게 건네주었다북한에 다녀왔다는 것이다팜플렛은 북한을 선전하는 내용들로조악한 인쇄와 그전 새마을 운동 홍보 사진처럼 서툰 연출이 드러나는 사진들이 채워져 있어 마치 우리나라 60년대 잡지를 보는 듯 했다. 

 

그들이 왜 그 북한 팜플렛을 내게 보여준 것 일까남북으로 갈라져 있어도 내가 같은 한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북한에 왜 갔냐고 물었더니 ‘하느님이 가라고 했다’고 말했다독실한 기독교인인 그 부부는 북한뿐만 아니라 휴가 때도 기아 난민 봉사활동을 위해 아프리카에도 갔었고 이번 북한 방문을 계기로 시드니에서 열린 탈북자를 포함한 북한 인민을 위한 종교모임에도 참석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인이 몇 장의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그녀가 북한에 있을 때 직접 찍은 것으로 그 중에 민들레를 찍은 것이 있었다주택이 많은 호주에서 앞뒷마당 잔디에 잡초와 함께 많이 피는 것이 클로버와 민들레다목수 부부의 부인은 북한에서 찍은 민들레 사진을 내게 보여주며 북한에도 민들레가 있다며 신기해했다자기 집에서 지겹도록 보던 민들레가 북한에도 있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다봄이면 지천으로 피는 민들레는 북한에도남한에도호주에도 있다.



희망이 있는 세상이지?

목수 된지는 오래고, 이제 이렇게 살 일만 남았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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