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사람은 반쯤 담겨진 그릇의 물과 같고 지혜로운 사람은 가득찬 연못의 물과 같다는 말이 있다. 그 말에 비추어보아도 나는 역시 반통의 물에 가깝다. 스스로 충만해서 일렁임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 것이고, 반쯤 모자라 출렁거리고 사는 어리석음이 나는 그다지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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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분열을 말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종이에 물방울이 덜어졌다고 할 때, 나는 물방울이 마악 번져가는 생생한 감각보다는 물방울이 다 마른 뒤에 보일 듯 말 듯 하게 남아 있는 얼룩에 대해 주로 말해온 것 같다. 또 종이가 찢겨지는 순간의 날카로운 비명을 내기보다는 그 예리한 날이 조금씩 가라앉고 무디어져갈 때야 비로소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인가가 나를 꿰뚫고 지나간 한참 뒤에야 비로소 그것을 말할 언어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항상 언어가 삶보다 늦게 온다. 뜨거움의 기억을 가지고 식어서 오고, 찢겨짐의 상처를 안고 아물어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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