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사라진 요리책 신수옥

한주환 2020. 8. 31. 00:06

배추 세 포기 절이려고

소금 항아리 열고 망설이다

전화기를 든다

익숙한 번호를 누르자

신호 한번 가지 않고 들리는 말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낯선 목소리에

가슴이 덜컹 힘이 빠진다

뜨거운 덩어리가 울컥 올라온다​

 

큰 언니의 번호를 눌러본다

소금 몇 공기 퍼야 하는지 모른다고 울먹이자

이 바보야, 네 나이가 몇인데

말끝을 흐린다

내 요리책이었던 엄마

음식 만들다 말고 전화기만 들면

몇십 년 한결같이

초판 내용을 유지했었다​

 

몇 번을 물어도 반갑게 말해주던

엄마 음성 그리워

배추를 절이다 말고

무릎 사이로 고개를 묻는다​

눈물로 푹 절여진 얼굴

간이 밴 표정이 엄마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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