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사랑니, 뽑다 최영미

한주환 2020. 6. 2. 23:41

그 여름의 끝에 나는 치과 의자에 누워 있었다

커튼이 쳐진 커다란 창으로 한줄기 양심의 가책 같은

따가운 아침 햇살이 수상스레 어른거리고

순서를 기다리는 고장 난 입들을 쳐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비명을 지르며, 비명을 삼켜야 하는 입을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견디기 힘든 가를

주인 몰래 그 캄캄한 동굴 속에서 하루하루 썩어 들어갔을 시커먼 사랑니를

 

 

내 몸에 박힌 너의 기억을 단숨에 뽑아 버릴 수 있다면

마취 주사를 맞지 않아도 좋겠지

어느 바늘이 날 찌를지

어느 핀셋이 부어오른 잇몸을 잘못 건드렸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당신의 아픈 그 말이 날카로운 못이 되어

가슴에 박혀 있었기에

아픔도 최면도 없이 삼십 몇 년의 생애를 들어냈다.

 

 

 

깨어나 나는 다시 물을 마시고

일어나 다시 나는 신문을 읽고

그래도 생각나면 사랑의 역사를 쓰고 또 지우리라.

 

 

 

빚 독촉하듯 치통 다시 도지면

 

고은 사건이후 최영미 시는 볼 수가 없다. 진보적인 남성들이 운영하는 출판사에선 기피인물이다.

창비사에서 운영하는 오늘의 시에서도. 근데 오늘 처음 올라왔다. 

사진을 찾다 보니 운동권 전체를 성추행 집단으로 몰지 마라는 기사도 있다.

 

여럿이 같이 술 처먹다 주무르고 자위한 놈이 잘못이지.. 그걸 몇십년 눈감은 년놈도 똑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