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돌아가신 엄마를 요양원에 보낸 게 6년전이다.
집에서 혼자 있으면 냉장고에 있는 반찬, 밥통에 있는 밥으로 점심을 혼자
차려서 먹질 못해 꼭 누가 들어와 챙겨 줘야 했다.
그전에 대학 동기 부친상이 있었다.
모친은 암으로 먼저 돌아가시고, 자식 3남매가 2달씩 돌아 가면서 모셨는데,
본인도 돈이 있고, 자식들도 여유가 있어 요양원 가는 걸 불효라 생각했단다.
근데 갈 차례가 된 아들집 며느리가 독감이 걸리고, 다음 차례인 딸이 정년 퇴직해
산티아고를 갔다. 그래서 노인네 혼자 한 달인가 혼자 살다 돌아갔다.
하루 한두끼로 대충 넘어가니 저항력이 약해져 패혈증? 으로..
그래서 요양원에 보내자 했다.
충청남도 요양원, 요양병원에 보행기. 휠체어 등 노인용품을 공급하는 아는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어디가 제일 양심적이면서 환경이 좋냐고. 그래서 추천 받은 곳이 위 사진이다.
요양 병원처럼 빌딩, 8인 병실이 아니고, 단층이라 보행기로 실내에서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시골이라 공기도 맑고, 원장도 목사님이고.. 요양비? 처음에 76만원, 요양원 입소자 4명이었고,
엄마 보러가면 요양비 먼저 부쳐라, 원장님 어렵다 했다.
한겨레 기사다. 치매 걸린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고 후회하는,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사라졌다. 덥다고 문을 열어둔 게 화근이었다. 집에 돌아오자 사색이 된 아빠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20층도 넘는 아파트에서 노인이 어떻게 내려갔을까’ ‘엘리베이터도 못 타고 길도 모르고 자식도 못 알아보는 양반이 어딜 갔나’ ‘못 찾으면 어떡하지…’. 안 좋은 생각이 꼬리를 물자 우리는 모두 정신 줄을 놓아 버렸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아파트와 집 주변을 나눠 샅샅이 뒤졌다.
그렇게 네 식구가 소리를 지르며 찾은 지 한 시간 만에 할머니를 아파트 2층 계단에서 발견했다. 아빠는 할머니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가긴 어딜 간다고 나갔어. 자식도 못 알아보는 양반이 왜 자꾸 간다고….” 아빠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었다. 엄마도, 나도 울었다. 우리는 그저 복도에 주저앉았다. 평생 길러준 부모를 고작 두달 모시고서 피폐해진 것이 부끄러워서다. 할머니는 그 와중에도 ‘집에 갈라고’를 연발했다. 밤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갔던 그날 밤 우리는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창문까지 닫고 누웠다. 치매 앞에서 네 식구는 무력해졌다.
그렇게 생채기를 남기고 난 뒤에야 지방에 있는 한 치매 노인 요양원을 구할 수 있었다. 허름한 요양원에 있던 할아버지까지 모시고 왔다. 요양원비에 기저귀, 간식비 등을 포함해 한달에 한분당 150만원이 들었다. 이 역시 6남매가 나눠 내기로 했다. 돈으로 해결할 수만 있다면 감사해야 했다.
요양원에 들어가면서 할머니는 허리까지 길었던 머리를 짧게 잘랐다. 늘 은비녀로 곱게 정돈한 머리의 할머니는 사내아이처럼 짧은 머리가 됐다. 그런 머리가 감기기 쉽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할머니는 유난히 조용했다. 목욕은 일주일에 두 번, 밥도 잘 나오고 간식도 드신단다. 한데 생기가 사라졌다. 꼭 호되게 혼난 어린이집의 아이 같았다. ‘집에 가서 니 아버지 밥해야제’ 를 연발하던 고집불통 할매는 없고 얌전한 요양원 노인이 앉아 있었다. 밤에 잠을 안 주무셔서 약을 좀 먹였다는 얘기도 있고, 집에 가겠다고 하도 고집을 부려서 안정제를 투여했다는 말도 들려 왔다.
그래도 우린 할 말이 없었다. 고작 두 달 만에 두손 두발 다 들어버린 것들이 자식이라고 와서 ‘왜 어머니를 함부로 대하느냐’ 고 말하는 건 자기 기만이었다. 여기서 쫓겨나면 갈 데가 없기도 했다. 엄마와 아빠는 그저 요양원 보호사 선생에게 용돈을 쥐여 주며 “잘 좀 부탁 드린다”고 얘기했다. 나는 “할머니 미안해”만 반복했다.
쓸쓸하게 돌아섰다. 자주 오겠다고 말했지만 요양원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저마다 지고 있던 삶의 짐을 다시 떠올렸다. 할머니에게 느꼈던 미안함은 내일 출근, 모레의 실적 마감, 다음주에 있을 시험에 대한 걱정으로 곧 사라졌다. 잠시 나마 효자이고 싶었던 우린 그렇게 또 불효자로 살아가고 있다.
불효자? 아니다. 절대
외할머니가 치매 중증이다가 돌아 갔다. 선친이 외삼촌이 고생하니 집에 모시고 왔다. 엄마가
맏딸였으니.. 아파트 현관 문을 몸으로 부딪쳐 쭈그리면서 열고 나가는데 눈에서 파란
광채가 나는 것을 보았다. 내가 아는 외할머니가 아녔다. 결국 서울 가서 거리에서 돌아가셨다.
이런 치매 환자 집에서 모시다가 입술 돌아간 며느리 많이 봤다. 요양원 가야 한다.
우리도 얼마 안 남았다. 언제까지 돈 벌고, 건강하게 사냐..
몸은 건강한데 머리가 못 따라가는 게 치매다. 평균 수명이 80을 넘어가면서 당연하다.
엄마가 치매 등급을 받으면 요양원비가 싸진다 하는 원장님 의견에 따라 치매 등급중 제일
낮은 등급을 받고, 지역 의료 보험료가 만원이면 요양비가 27만원으로 내려가더라.
보호자인 교수 하는 형이 직장 의보에 넣어 놓고 세금 공제를 받으면서 한 푼도 안내고 있었다.
요양원비가 연체되서 원장이 전화하면 안 받는다고. 결국 내게 연락이 왔다.
그래서 이런 경우 어떻게 하냐 그랬더니 내보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흔하단다.
지역 의보로 바꾸고, 보호자도 여동생으로 바꿨다. 의료보험공단에서 그렇더라
사정은 이해하는데 싸움이 생긴다고.
기초 연금 20만원 받으니 한달 7만원 부담으로 내려갔다.
그랬더니 연말 정산 끝나면 바꾸지 하더라만
근데 우리 자식들은 요양원장 전화 받을 거라 생각합니까?
엄마가 결혼할 때 집도 해주고, 재산도 물려준 아들이 전화를 안 받았습니다.
세금 공제 받으면서 용돈도 한번 안 주었고,
알 수 없습니다. 자식들 맘은.. 아니라고 확신하지 마세요.
엄마는 이 요양원에서 돌아갔다. 요양병원에 보냈어야 하는데 끝까지 모신다고
직원들이 회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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