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스탠 클라인과 마르시아 부부의 모험기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전미 은퇴자 협회가 발행하는 격월간 잡지 <AARP>의 인터넷 판에 최근 실린 이들의 얘기를 소개합니다.
마르시아가 가장 싫어하는 물음 가운데 하나가 어디에 사느냐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에겐 너무나도 쉬운 이 물음이 그에겐 참으로 대답하기 까다로운 것입니다.
그의 집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동시에 세계가 바로 그의 집입니다.
클라인 부부는 살던 집은 물론 대부분의 소유물을 모두 처분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만큼 머물 뿐입니다.
동갑내기인 이들의‘영원한 여행’이 사실상 시작된 것은 1992년, 55살 때였습니다.
스탠의 부동산, 특히 도심 재개발 관련 사업이 신통찮게 됐던 즈음, 클라인 부부는
자신들 손에 남은 것들을 털어 오랫동안 꿈꿔왔던 세계 일주 여행에 나서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 마르시아는 사회복지사였습니다.
애들은 모두 제 앞가림을 하고 있어 다른 부담은 없었습니다.
건전한 미국 시민으로서 의무도 모두 이행해 왔습니다. 삶의 다음 단계를 찾아 나설 시점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배낭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집은 세를 주고, 일본행 편도 항공권 두 장만 들고 대장정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2년 동안 세계를 다녔지만, 든 비용은 예상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첫 해에 교통비를 포함해서 고작 1만 2천 달러(약 1100만원)밖에 쓰지 않았습니다.
일본, 동남아, 인도, 네팔, 중국, 아프리카, 그리고 멕시코로 이어지는 행로였습니다.
멕시코에서 이들은 주인이 비운 집을 넉 달 동안 지켜주며 지냈습니다.
여행 내내 유스 호스텔이나 값싼 호텔에서 묵거나 홈스테이를 했고, 절대 촉박한 일정은 잡지 않았습니다.http://www.aarpmagazine.org/people/stanandmarcia.html
(이 부부의 여행기와 역정이 담긴 사이트)
이들은 2년간의 여행을 통해 자신과 세상에 대해 많이 배우고, 새롭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동안 살면서 모으고 모은 수많은 소유물들이 갑자기 가치를
잃었습니다. 노후의 안락함은 삶의 우선 순위에서 뒤로 처졌습니다.
안락함을 희생해 얻은 것은 기대보다 훨씬 컸습니다. 호텔의 편안한 잠자리를
포기하는 대신 유스 호스텔에서 젊은 배낭 여행객들과 끝없는 대화를 나눴습니다.
서로가 보고 들은 것과 값싼 잠자리.·교통편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얘기는
꿈과 아이디어 나누기, 다른 의미 있는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 참으로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이들에겐 인도의 타지마할을 본 것도 즐거움이었지만, 많은 여행객들과 맺은 관계가 한층 값진 것이었습니다. 특히 시골 집의 홈스테이 경험은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여행과 달리 각국 사람들의 살아 있는 삶을 맛보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습니다. 세계 시민들의 만남을 주선하는‘people to people international’’servas international’이 훌륭한 다리가 돼주었습니다.
2년의 여행이 끝날 무렵 이들은 자신들이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됐다고
합니다. 은퇴, 단순한 삶, 그리고 더 많은 여행을 통한 다른 문화에 빠져들기.
장기전 돌입을 위한 전략을 짰습니다. 일단 거사 자금 조달에 힘을 쏟았습니다. 자신들의 집은 계속 세를 주는 대신 지역 광고란을 샅샅이 훑어 집을 봐줄 사람을 구하는 광고를 찾아냈습니다. 이들의 건전한 이력은 집주인의 신뢰를 얻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들의 집에서 겨우 10마일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돈 한 푼 내지 않고 살 수 있는 집을 찾아냈습니다. 자기 집에 대한 월세는 꼬박 챙겼습니다.
(조금 얄미워 보입니다만) 다시 일을 해서 최대한 저축을 늘렸습니다.
검소한 생활이야말로 이들이 꿈의 실현으로 가는 지름길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들은 참으로 소중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얼마나 적게 쓰며 살 수 있는지,
그 동안 필요 없는 물건을 얼마나 많이 사들였는지 등등. 허리띠를 졸라 매는 것이
여행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멀지 않아 그것이 혜택임을 알게
됐습니다.
소비를 중단할 때 정말로 행복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만큼 더 빨리 물건으로부터, 소비로부터 자유롭게 됐다는 뜻입니다. 이 부부는 3년 뒤인 60살이 되던 해인 97년 은퇴를 했습니다.곧바로 2단계 계획에 돌입했습니다. 몇 주에 걸친 창고 세일을 통해 가구, 옷, 책, 가재 도구 등 갖고 있던 것들을 떠나 보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카타르시스였습니다. 정말 버리고 싶지 않은 몇 가지만 남기고. 스탠은 모터 사이클과 도구 박스, 마르시아는 애들이 어릴 때 그린 그림이나 카드, 사진, 앨범 등 기억 거리을 택했습니다. 이것들은 친구 집 다락방으로 옮겼습니다.
마지막으로 집을 팔았습니다.
계약을 끝낸 이들은 두툼한 수표 뭉치를 손에 들고 배낭을 메고는 변호사 사무실을 나섰습니다. 차를 몰고 가 두 딸에게 한 대씩 주고 작별 인사를 나눈 뒤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새로운 인생의 첫 기착지가 될 아프리카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끝이 없는 은퇴 여행에 나서기 위해 재정적으로, 정서적으로 준비가 돼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들은 오랜 기간 본질적 질문을 자신들에게 던졌습니다.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사랑하는 딸·손자 등과 너무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배낭만 메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미지의
것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이들은 이미 길 위의 삶이 주는 매력을 맛보았습니다.
자신들의 결정에 한껏 취했습니다. 이전 여행과 달리 방문국 풀뿌리 시민단체의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지역 주민들과의 접촉면을 훨씬 넓혔습니다. 은퇴 여행의 첫 기착지는 짐바브웨였습니다. 마르시아는 글쓰기 지도나 소액 대출 업무, 도서관 재정비 등의 일을 했습니다. 스탠의 임무는 사람들이 작은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곧 더 필요한 일이 건축 부문의 감독과 재조직임을 알고 그 일을 했습니다. 재건을 돕고, 젊은이들을 훈련시켜 자신이 떠난 뒤에도 그 부분을 맡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석 달 만에 이 부문은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정작 놀란 것은 스탠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자원봉사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늘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삶을 통해 배운 기량을 활용해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보람찬 일인 동시에 의욕을 돋구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겨우 시작일 따름이었습니다.
이 부부는 마침내 세계 시민이 됐습니다. 인터넷 덕택에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해마다 일정 기간은 미국에서 생활합니다.가족과 친지를 방문하며. 손자들의 재롱도 보고, 건강 검진도 받고. 나머지 시간은 각국으로 여행을 다닙니다. 다른 나라 사람의 집을 봐주며 머물기도 하고, 자원봉사도 하면서. 남 아프리카, 서 아프리카, 인도, 남아메리카에서 이런 생활을 해왔습니다. 또 다른 대륙을 찾고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든.
스탠이 다른 시니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지금 균형이 잡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우리에게는 모든 게 변할 수 있는 것들이다. 금방이라도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우리의 삶이 저당 잡히지 않는 한, 우리에겐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