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T는 박사다.
박사는 박사인데, 국내 박사다. 남들이 믿거나 말거나 시댁이 믿어주거나 말거나, 아줌마 T는 정말 노력했다. 아줌마 T는 연구하고 논문을 내고 또 연구하고 논문을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줌마 T는 전강이 될 수 없었다.
아줌마 T는 아저씨 T와 결혼했다.
아저씨 T는 '약간 명문대' 혹은 '이른바 명문대 축'을 나와 증권 회사에서 일했다. 시어머니는 아줌마 T에게 10년 동안 끊임없이 말했다. 우리 아들은 교사와 결혼했어야 했는데, 박사 받고 교수라고 해서 장가 보냈는데, 그게 아닌 갑다? 넌 선생이 아닌 갑다. 계속 학교를 옮겨 다니기만 하니.
아저씨 T는 아들을 많이 원했다. 자기는 외동이라서 형제가 많았으면 했다고 했다. 아줌마 T는 아들을 셋 낳았다.
아들 셋을 데리고 공부하기는 쉽지 않았다. 유아원을 보내도 나이에 따라 다른 유아원으로 보내야 했다.
아줌마 T는 10년간 강사를 뛰면서 친정 어머니에게, 친정 어머니의 친척들에게, 말로 다 못할 빚을 졌다.
친정 어머니는 애를 봐주러 오시다가 길에서 쓰러졌다.
뇌졸증으로 친정 어머니를 보내고 가장 만만한 친척은 밥 집을 하는 이모였다.
아이를 좋아한다는 남편은 자기 애를 봐주지 않았다. 시어머니도 봐주지 않았다. 세 시간 걸리는 지방 대학에 출강을 해야 하는데 막내가 아플 때면, 유아원에서도 아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첫째 둘째는 유아원에 보내고 밥집하는 이모에게 막내를 던져 놓고 왔다. 이모는 막내 아이를 업고 30인분 쌀을 씻었다. 친척들의 원성이 갈 수록 자자했다. T씨네 새끼 셋으로 뿔려 놓겠다고 친정 어머니 잡아먹은 걸로도 모자라서 이모까지 잡아먹으려고 그러냐, 딱 부러지게들 입을 모았다. 그동안 겨우 첫째가 취학 연령이 된 게 성과라면 성과였다.
남편이 해고된 건 그 즈음이었다. 거래를 잘못했는지 줄을 잘못 탔는지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아줌마 T가 확실히 알게 된 건, 아줌마 T가 대학교 강사 세 군데를 뛰어도, 유아원 두 군데를 보내는 비용에다 다섯 식구 생활비는 안 나온다는 거였다. 아줌마 T에게는 한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유아원 유치원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다시 취업 준비를 해야하는 남편은 아이들을 볼 수 없었다.
아줌마 T는 밤에는 빌딩 청소를 하고, 낮에는 애 셋을 보면서 부동산 중개인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한다.
박사 그런 거 다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회사 다닌다고 애들 안 보고, 짤려 취업 준비한다고 또 안보는 남편,
장모 잡아 먹은 사위다. 그래도 반성 안하는 한국 남자들..
지방 대학 시강하면서 아이 셋 육아, 살림, 가족 생계까지 책임지는 한국 여자들..
친구 동생 연대 영문과 수석 입학, 졸업, 미국 박사하고 지방대서 전강하려면 발전기금 몇 억 내라는 말에 딱
교수 포기하고 시집갔다.
더럽게 전강 되느니 빌딩 청소하고 부동산 중개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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