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L은 효부다.
아줌마 L이 효부라고 소문이 난 이유는 시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그 까다로운 입맛을 40년 넘게 맞춰줘서도 아니고,
지방에 사는 시동생을 서울로 불러와서 데리고 있다가 줄줄이 장가 보내서도 아니고,
대장암으로 누운 시어머니의 병 수발을 오래 해서도 아니다.
아줌마 L이 효부라고 소문난 이유는 한 번의 폭행 때문이다.
칠십에 세상을 뜬 시어머니 K에게는 오래된 시앗 K'가 있었다.
K'는 원래 술집 여자로 시아버지 P의 비위를 잘 맞추는 지방 여자였다.
시어머니 K가 아들 셋을 낳았다면 시앗 K'는 딸 둘을 낳았다. 시앗은 가난한 여자였다.
시아버지 P가 곧 밥줄이자 직업이었다. 그만큼 끈질겼다.
보통 시앗을 보면 집으로 쳐들어와 들부수는 건 본 처의 몫이다. 시앗 K'는 본인이 시어머니 K의 집으로 쳐들어와서 시어머니 K를 질리게 했다. 시어머니 K는 시앗 K'에게 헤어져 달라고 어르고 구슬르다 못해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시어머니 K는 모든 희망을 시아버지 P가 아닌 아들 P'에게 걸었다.
며느리이자 아줌마인 L을 볶아 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시어머니 K의 연인은 아들 P'였고
연적은 시앗이 아닌 며느리, 아줌마 L이었다.
아줌마 L은 그 시집살이가 어떠했는지 굳이 말로 옮기지 않는다. 다만 몇 가지를 옮기면 이러하다.
깍두기는 3센티 3센티 3센티가 되어야 한다는 게 시어머니K의 지론인데, 아줌마 L이 그 규격을 맞추지 못하자 손등을 칼 등으로 치면서 자를 갖다 주고 맞춰 자르라고 했단다.
시어머니 K의 취미는 아줌마 L이 분리수거를 제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하는 거였는데, 그걸 위해서는 온 쓰레기를 헤집고 틀리면 다시 싸라고 했다고 한다. 아줌마 L이 제대로 다 잘한 날은 온 동네의 분리수거 쓰레기 봉지를 전부 뒤지고 다녔다. 그리고 틀리게 싼 사람이 있으면 초인종을 누르고 다시 싸라고 했다. 한 번은 분리수거를 잘못한 집의 초인종을 누르자 웬 외국인이 나왔는데, 시어머니 K는 그 외국인이 한국말을 알아듣든 말든 충분히 야단을 치고 왔다고, 아줌마 L은 웃으며 말한다.
시어머니 K가 대장암로 누웠다가 사망한 날, 아줌마 L은 그저 지쳐있었다.
2월의 추운 날씨에 생리가 터지고, 설사는 겹쳤는데, 한창 일할 나이의 아들이 셋 인지라
병원 빈소로 찾아오는 손님들은 끊이지 않았다.
시아버지는 한쪽에서 막걸리를 좀 먹다가, 육개장을 좀 먹다가, 수그리고 자다가, 고스톱을 치다가 하면서, 혼자 소소히 놀고 있었다.
그 때였다. 시앗 K'가 소복을 입고 나타난 것은. 향피우고 국화꽃 놓고 가겠다고 성큼성큼 병원 빈소로 들어섰다.
아줌마 L을 피곤하게 한 직접적인 인간이 시어머니 K라면, 간접적인 인간은 시앗 K'였다.
아줌마 L는 갑자기 머리 꼭지가 휙 돌았는지 어쨌는지, 시앗 K'에게 육개장을 던지고 이 뺨 저 뺨 쳤다.
시앗 K'도 지지 않고 아줌마 L의 머리채를 잡았지만, 인간이란 기습 공격에 약하게 마련.
60대 체력과 40대 체력이 다른 것도 한 몫 했다.
아줌마 L은 시앗 K'를 지근지근 밟아 놓고 경찰서에 끌려가서 벌금 내고 나왔다.
아줌마 L의 친구들은 다 아줌마 L더러, 효부네 효부야, 내 며느리는 누가 있어 나 죽으면 저렇게 시앗을 밟아 줄꼬,
하지만, 아줌마 L의 가장 절친한 친구 L'만큼은 그 속을 안다.
시아버지 P는 여자 취향이 뚜렷한 남자였다. 시어머니와 시앗은 형제라고 해도 얼추 믿을 만큼 닮았다.
광대뼈가 강한 것이나, 눈꼬리가 올라간 것, 어깨가 좁고 손발이 작은 것도 같다.
사부작 사부작 걸어 들어오는 시앗 K'를 보고, 아줌마 L은 시어머니 K를 떠올린 것이다.
평생 시어머니에게 대들어보지 못한 아줌마 L은, 시어머니 K를 팬다 생각하고 시앗 K'를 팬 것이다.
이 년아 좀 맞아 봐라, 죽었으니 맞아봐라 이 년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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