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굴비 오탁번

한주환 2018. 3. 5. 22:30




수수밭 김 매던 계집이 솔개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장수가 지나갔다 
―굴비 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 수염을 한 굴비 장수는 
뙤약볕 들녘을 휘 둘러보았다 
―그거 한 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 



수수 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 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 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라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 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빡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 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




'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 키우기 페데라프  (0) 2018.03.09
효부 되기 페데라프  (0) 2018.03.09
우정인 것 처럼 사랑하기 하모니  (0) 2018.03.05
계란 프라이 마경덕  (0) 2018.03.05
버드나무집 여자 유홍준   (0) 2018.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