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안도현

한주환 2018. 2. 2. 01:17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어머니 앞에 툭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한 마디,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 
가장으로서의 자랑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고 애정이나 연민 따위 더더구나 아니고 다만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 같아서 좋았던, 그 말 

남의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이웃에 고기 볶는 냄새 퍼져나가 좋을 거 없다, 어머니는 연탄불에 고기를 뒤적이며 말했지 

그래서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방문을 꼭꼭 닫고 볶은 돼지고기를 씹으며 입안에 기름 한입 고이던 밤 

구훈이 아버님도 돌아가셨구나. 99년 돌아가신 아버지과 잘 아셨던 양반인데.. 모쪼록 부의를 전해다오. 아버님을 기리면서 시 하나 올린다. 

'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준혁의 변화  (0) 2018.02.02
계란 한판 고영민  (0) 2018.02.02
굽이 돌아가는 길 박노해  (0) 2018.02.02
주부가요열창 양정자  (0) 2018.02.02
추천사 서정주  (0) 2018.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