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쓴 글

빈라덴 사살이유

한주환 2018. 1. 29. 23:49

을 알 것 같다. 왜 비무장인 오사마를 다짜고짜 죽였을까.



그것도 911사태가 10년이 되가는 지금

골프장에 뜬 골프공도 보인다는 미국의 첩보위성이,

일년에 수백억달러를 지원했던 파키스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만 6년을 군사학교 옆에서 살았다는 오사마를 왜 찾지 못했을까.


3일 타임스 오브 인디아 등 인도 언론과 걸프뉴스 등 일부 아랍권 언론들이 빈 라덴 저택을 ISI 안가로 일제히 지목했다. 특히 걸프 뉴스는 익명의 정보관계자 말을 인용해 “ISI가 아보타바드의 저택을 안가로 사용했다”고 전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ISI가 안가 장소를 자주 바꾸기 때문에 빈 라덴이 저택을 정확하게 언제부터 언제까지 사용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아보타바드 내에 안가를 뒀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타임스 오브 인디아 역시 파키스탄 군 관계자 말을 통해 “파키스탄 내 동향에 관해 ISI가 모르는 게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빈 라덴이 ISI 비호하에 은둔생활을 해왔을 것으로 강력히 주장했다. - 문화일보 기사


조지 W 부시 전대통령은 왜 잡지 못했을까. 오사마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아프간, 이라크 전비가 1조2천억달러를 넘었다는데..


골수 유대인으로 군산복합체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당선된 부쉬는 남편 클린턴이 쌓아놓은 재정흑자를 쓸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비용으로.  먼저 아프카니스탄을 쳐들어 갔다.



또 세계 석유의 1/4을 쓰는 동부를 포함,40%에 달하는 자국 소비를 대느라고, 본토 , 알라스카 석유도 고갈된 미국은 교역이 금지되어 상대적으로 많은 매장량을 가졌던 이라크를 쳐들어갈 명분을 오사마로 만들었다.


사진은 포드사에 만든 F-250 트럭이다. 휘발류차로 6,800CC까지 있다. 1리터 가지고 2,3km 밖에 못간다. 미국애들 이것 사고 싶어 죽고 못산다. 7만불 이상 한다. 토요다가 못빼앗은 유일한 쟝르, 트럭시장이다. 그냥 트럭이라 부른다. 큰 트럭은 1 t, 5 t을  붙여 부른다. 거의 20 피트 컨테이너를 끌 수 있는 힘이 있는데 대부분 그냥 다닌다. 휘발류를  붓고 다닌다.




그래서 부시는 오사만 안 잡았다. 이라크에 숨어있던 후세인만 애꿎게  잡혔지.


기름을 가져다 써야 나라가 돌아가니까. 당시엔 미국, 파키스탄, 영국, 아프간 모두 다 이해관계가 맞았던 것이다. 파키스탄은 오사마가 있어야 원조가 들어오니 인질로 잡고 있었고, 미국은 오사마가 잡히지 않아야 아프간, 이라크에 계속 주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무역장관 엘리자베스 시먼스는 비피 간부를 만나 "영국이 미국 정부의 유력한 지지자인데도 영국 업체들이 이라크에서 손해를 본다면 온당하지 않다"며 "미국 정부에 로비를 해 비피(BP)도 참여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라크에 전략적 이해가 없다고 주장했던 비피는 영국 정부와의 회동에서는 "(이라크는) 장기적 안목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실토했다. 셸도 못지않게 안달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외무부 중동국장 에드워드 채플린은 석유업체 인사들을 만난 뒤 "셸과 비피는 장기적 미래를 위해 이라크에 이해관계를 갖지 않을 수 없으며, 우리는 사담 후세인 이후 영국 업체들이 (영국 정부의) 행동에 대한 공평한 몫을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기록했다. 결국 두 업체는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에 이어 세번째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이라크에서 큰 개발권을 따냈다. 비피는 2009년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와 함께 이라크 정부로부터 최대 유전인 루마일라에서 20년짜리 개발권을 얻었는데, < 인디펜던트 > 는 이익이 연간 4억3000만파운드(7630억원)라고 추산했다. 셸 쪽도 대형 유전인 서쿠르나에서 개발권 2개를 확보했다. 한겨레 기사중에서


오바마는 철군을 대선공약으로 하고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철군을 못하고 있다.

석유때문이다.

근데 지금은 왜 오사마를 잡아야만 했을까. 미국 전쟁비용은 최근 리비아 전쟁을 제외하고 매일 8억달러가 들어간다. 이 돈이 무지막지한 재정적자를 만들었고, 국채 상한선을 올려야 할 정도로 국고가 텅텅 비었다. 올해 상한선을 올리지 않으면 국가부도가 온다.

세계 최강국이 극한까지 몰렸다. 결국 미국 재정적자가 오사마를 노출시킨 것이다.


근데 오바마는 오사마를 왜 죽였을까. 부시는 철천지 원수이던 오사마가 죽었는데 아래 행사 참석을 거부했을까?


Washington (CNN) -- When President Barack Obama lays a wreath at the 9/11 Memorial on Thursday, he had hoped to be joined by former President George W. Bush. But in declining this invitation, Bush has left some observers puzzled, while others were supportive of his decision.


 만 6년전이면 2004년부터  부쉬랑, 오사마랑, 파키스탄이랑 사이좋게 놀았었는데. 오사마가 살아서 미국땅에 재판 받으러 와봐라. 위키리크스가, 인터넷이 가만두나..


오바마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쏴서 입을 봉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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