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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메모> 그래도 그때는 매일 저녁 팔다 남은 멸치 부스러기를 넣어 끓인 국물에 수제비 정도는 끓여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마저 떠난 뒤에는 먹을 양식이 있다 없다 했습니다. 아르바이트 해서 연탄을 사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연명을 하기는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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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굶고 학교에 남아 밤공부를 하다 허기를 못 참아 있는 돈을 다 털어 내가 마련할 수 있는 것이 건빵 한 봉지뿐이던 날도 있었습니다. 쌀이 떨어진 걸 보고 친구들이 자루를 들고 여러 친구 집을 다니며 한두 됫박씩 걷어다 마루에 던져두고 간 날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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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료를 안 낸 사람이 나 혼자라서 교무실에 불려갔는데, 언제까지 낼 수 있느냐고 묻는 담임선생님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까지 줄 수 있는지 물어볼 어머니 아버지가 옆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강둑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쪼그려 앉아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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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제 비
둔내장으로 멸치를 팔러 간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미루나무 잎들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얇은 냄비에선 곤두박질치며 물이 끓었다 동생들은 들마루 끝 까무룩 잠들고 1군 사령부 수송대 트럭들이 저녁 냇물 건져 차를 닦고 기름을 빼고 줄불 길게 밝히며 어머니 돌아오실 북쪽길 거슬러 달려가고 있었다 경기도 어딘가로 떠난 아버지는 소식 끊기고 이름 지을 수 없는 까마득함들을 뚝뚝 떼어 넣으며 수제비를 끓였다 어둠이 하늘 끝자락 길게 끌어 허기처럼 몸을 덮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국물이 말갛게 우러나던 우리들의 기다림 함지박 가득 반짝이는 어둠을 이고 쓰러질 듯 문 들어설 어머니 마른 멸치 냄새가 부엌 바닥 눅눅히 고이곤 하였다.
멸치 냄새 올라온다. 아스라하게 어려웠던 시절도 생각나게 하는 시다.
내도 2학년때 수업료 늦게 내면 박준태 담임이 조례시간에 일으켜 세웠다. 공주갑부가 왜 안내 하던 생각이 난다. 도선생님과 같은 시대를 살았구나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