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외로움에 대하여 박상천

한주환 2018. 1. 29. 01:00



양말은, 



발톱을 속에 숨기고

그것이 몰래 몰래 자라는 만큼의

분노를 키우고

슬픔을 키우고

적의를 키운다





지하도를 내려가며 다방을 나오며

악수를 하며 술을 마시며




바람 속에 이리저리 날리며

얼굴에 웃음을 띠울 때마다




어둠 속에서 몰래 몰래

발톱을 키운다 양말은




그러나 때 묻은 얼굴로 돌아와

양말은 피곤해 쓰러지고

감춰졌던 발가락을 내려다 보면

아니다,




양말이 키워 온 것은

분노도 슬픔도 적의도 아니다 아니다


그저 부끄러움

빈손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우리들

일상의 부끄러움만이

얼굴을 붉히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새 양말의 빨래 비누 냄새 속에

분노도 슬픔도 감춰지고

발톱이 자라는 만큼의 하루 분량의

꿈을 갖는다 우리는, 양말은




나이가 들수록 제일 불쌍한 부위가 발이다. 안전화 속에서 하루 종일 고생하는 내 발..

굳은 살이 트고, 발톱은 두꺼워져 가고,

젊었을 땐, 겨울에도 사발 물이 얼던 방안에서도 맨발이 이불밖에 나와야 잠을 잤는데,

지금은 발이 제일 춥다. 특히 뒤꿈치가. 수면 양말을 신고 잔다.


너희 발은? 내 발이 제일 나이를 느끼게 한다.

너희 꿈은? 아직 큰가? 발톱 크는 하루 분량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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