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개울과 바다 도종환

한주환 2018. 1. 29. 01:02




개울은 제가 그저 개울인 줄 안다

산골짝에서 이름 없는 돌멩이나 매만지며

밤에는 별을 안아 흐르고 낮에는 구름을 풀어

색깔을 내며 이렇게 소리없이

낮은 곳을 지키다 가는 물줄기인 줄 안다

물론 그렇게 겸손해서 개울은 미덥다



개울은 제가 바다의 핏줄임을 모른다

바다의 시작이요 맥박임을 모른다



아무도 눈여겨 보아주지 않는

소읍의 변두리를 흐린 낯빛으로 지나가거나

어떤 때는 살아 있음의 의미조차 잊은 채

떠밀려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고 있는 줄로 안다

쏘가리나 피라미를 키우는 산골짝 물인지 안다



그러나 가슴속 그 물빛으로 마침내

수천 수만 바닷고기를 자라게 하고

어선만한 고래도 살게 하는 것이다




언젠가 개울은 알게 될 것이다

제가 곧 바다의 출발이며 완성이었음을

멈추지 않고 흐른다면

그토록 꿈꾸던 바다에 이미 닿아 있다는 걸


모처럼 건진 시다.

나이먹은 내도,

개울처럼 언젠가 수천만마리 고기를 품에 안아 키우는 태평양이 된다는..

꿈을 꾼다.

일부 사진은 고인돌, 밴쿠버스미스 블로그에서 복사했다.


'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란시사첩 정약용  (0) 2018.01.29
흑죽 손택수  (0) 2018.01.29
성공에 대하여 박성혜  (0) 2018.01.29
외로움에 대하여 박상천  (0) 2018.01.29
수제비 도종환  (0) 2018.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