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되었다. 아이들 다 결혼하고 손자, 손녀까지 생겼다. 좋은 직업에, 좋은 배우잘 만났다.
년금이 나올 나이인데도 일을 하고 있고, 프로젝트가 끝나서 이력서를 내면 바로 일이 생긴다. 한국에 살았으면 공짜 지하철타고 국민연금 수십만원 받으면서 어렵게 살았을 것이다.
텃밭 채소로 생활비가 안드는 경기도 광주 전원주택에 계속 살았을 것이다. 2000년에 짤려서 이민을 왔는데 한국에 남아 있었으면 어땠을까 아찔하다. 이민 직전에 고등학교에 들어간 딸 수업료가 나와서 담임에게 독촉을 받지 않게 하려 마을버스회사에 가불 신청을 했더니 권리가 아니고 회사 맘이란다.
고교 수업료, 대학 등록금, 출가할 때 전세금 등등 다 면제받은 캐나다다.
재수하는 딸, 고3, 1인 아들을 데리고 1996년에 이민온 선배가 학원비, 대학 등록금 다 절약했다는 말을 하니 캐나다는 복받은 나라야 했던 입사때 부장님 말이 생각난다.
20년 동안 한국 연속극, 영화를 안보고 살았다. 유투브 덕에 스토브 리그 등등 4,5편을 보았는데 얼굴은 익숙한데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이거 빼고 2000년 겨울 눈이 많이 와서 갈마터널을 버스가 못 올라가 걸어서 광주읍까지 가면서 결정한 이민이 인생을 갈랐다.
수업료 없는 세컨더리, 학자금 융자로 대학을 다닐 수 있는 캐나다에서 아이들이 멕길대학을 다닐 수 있었고, 평생 직장을 얻어서 한국 국적인 사위, 며느리가 캐나다 영주권을 받고, 손자, 손녀까지 시민권을 받았다.
그리고 손자, 손녀가 지금은 1,2살이라 매월 470불, 18세가 될 때까지 benefit이라는 지원금이 나온다. 아이들이 고2, 중3 때 이민을 와서 만불이 넘는 돈을 받았을 때가 2005년이다. 18세까지 매월 백불 넘게 나왔다. 아이들을 공짜로 키울 수 있는 나라가 캐나다다.
2004년 이민오면서 국민연금 2천7백만원을 돌려 받았다. 지금 한국에 있음 겨우 50만원 나오는 연금이었다.
올해부터 연금이 나오는 나이가 되었는데 싱글이니 매월 1,500불이고 수년간 직장에서 연금을 냈으니 1,2백불은 더 나올 것이다. 매년 조금씩 올라서 70세가 넘으면 2,700불까지 늘어난다.
다른 수입이 없어도 연금의 1/3을 노인주택 렌트로 내고 나머지로 식비를 해결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애들에게 부담을 안 주고 살다가 갈 수 있다는 말이다
2000년에 결정한 캐나다 이민이 무역협회 입사보다 훨씬 잘한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