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자살하는 이에게 바치는 시 정호승

한주환 2019. 5. 3. 09:44

꽃잎은 이슬을 무거워 하지 않기에
새벽마다 이슬이 앉았다가 사라집니다


꽃은 낙화의 때를 기다릴 줄 알기에
해마다 눈부시게 피었다가 사라집니다


그분은 오늘도 당신 대신 못 박히러 갔기에
지금 막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이제 그만 당신은 조용히 돌아오세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배반하지 말라고
그분이 당신의 가난한 마음의 발을
고이 씻어드리지 않던가요


사람은 누구나 눈물과 결핍으로 만들어집니다
저와 함께 새벽 미사를 마치고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골목으로
리어카를 끌고 빈 종이 박스를 주우러 다니시는 할머니의
종이 박스가 되어드려요



지게에 장작을 지고 장터로 가신
아버지도 평생 장작이 무겁지 않았습니다



죽기에 참 좋은 날이 있으면
살기에도 참 좋은 날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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