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청혼 박신규

한주환 2018. 11. 18. 09:14


수억년 전에 소멸한 별 하나
광속으로 빛나는 순간이 우리의 시간이라는,



은하계 음반을 미끄러져 온 유성의 가쁜 숨소리가
우리의 음악이라는,



당신이 웃을 때만 꽃이 피고 싹이 돋고
당신이 우는 바람에 꽃이 지고 낙과가 울고
때로 그 낙과의 힘이 중력을 지속시킨다는,



하여 우리의 호흡이 이 행성의 질서라는
그런 오만한 고백은 없다네



바람에 떠는 풀잎보다

그 풀잎 아래 애벌레의 곤한 잠보다
더 소소한 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기 위해,


주름진 치마와 해진 속옷의 아름다움
처진 어깨의 애잔함을 만지기 위해,



수십년 뒤 어느 십일월에도
순한 바람이 불고 첫눈이 내려서
잠시 창을 열어 눈발을 들이는데



어린 새 한 마리 들어와 다시 날려 보내주었다고
그 여린 날갯짓으로 하루가 온통 환해졌다고



가만가만 들려주고 잠드는 
그 하찮고 미미한 날들을 위해서라네


이런 시절이 다들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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