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시장이 죽고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이다. 사모님을 감싸고, 김재련을 반대하는 분이다.
나는 수십 년 함께했던 아내를 몇 년 전 잃었다. 병을 발견하고 입원해 수술 받고도 생명이 소실돼 가는 모습을 9개월 병상을 지키며 속수무책으로 바라봤다.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으나 의식이 없는 상태로 라도 딱 30년만 더 살아주기를 바랐다. '이 사람을 살려주시고 나를 대신 데려가 주세요' 라며 진심으로 기도했다.
아내가 떠나고 삶의 의미를 잃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었지만 소용없었다. 잠을 잘 수 없고, 밥도 모래알처럼 깔깔해서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아들 딸도 손주들도 아무 위로가 안 됐다. 내 형제들의 위로도 귀찮았다. 높은 건물을 보면 올라가서 뛰어 내리고 싶고 저녁에 자리에 누우면 아침에 깨지 말고 영원히 잠들고 싶었다.
두 사람이 특별히 애정이 깊은 사이도 아니었다. 싸우고 내가 며칠 가출했다 돌아오기도 한 평범한 부부였다. 하지만 고통은 임계점을 넘었다. 가슴에 구멍이 뚤렸다 는 말이 뭔지 알게 됐다. 아내가 없는 세상을 살아낼 자신이 없었다. 치매에 걸려서 기억을 다 잊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미쳐버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마약을 먹으면 이 고통을 잊을 수 있을지 술을 먹으면 될지 별 궁리를 다 하다 정신과를 찾았다. 젊은 여의사 앞에서 한참을 울며 상담하고 약을 처방 받았다. 몇 달을 약에 의지하며 살아냈다. 시간이 약이라고 이제는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간다.
정말 이럴까? 난 아니다. 이런 고통? 한번도 없었다.
한국 남자들 너무 의지하고 산다. 삼시 세끼 밥도, 빨래도, 집안 청소도 안하고 차려주는 밥만 먹고, 설겆이는 당연 안 하고, 집안일은 평생 안 하고 살았으니 이해는 가긴 간다,
요리도 하고, 설겆이도, 변기 청소도 하고 살아라. 평소에 같이 살 때!
은퇴해서 집 안에 있으면서 냉장고에 있는 반찬, 전기 밥솥에 있는 밥도 챙겨 먹을 줄 모르는 노땅들이 천지다.
그저 마누라가 밥상을 챙겨 줘야 간신히 먹는!
이런 남자는 한국만 있다. 북한도, 중국도, 일본도 집안 일은 많이 한다.
김치는 평생 먹었으면서 담가 보지 않았고, 반찬이 5개 이상이 되어야 밥상이다 하면서, 하나도 만들어 보지 않고 평생을 살았으니, 아내의 빈 자리가 저렇게 크다.
이민 와서 놀랜 건 중국 남자들이 부인이 영어 회화 배우러 가면, 점심을 만들어 배달을 오더라.
베이징 가니 여자 화장실 앞에 선 줄이 남자더라. 부인을 위해 줄을 대신 서 더라만
어차피 한 날 한 시에 같이 죽지 못한다.
한국 남자들 손가락에 물 좀 묻히고, 걸레, 진공청소기도 잡고, 빨래도 개키고 살아라,
그러니 한남 소리 듣는다. 전세계에 이런 남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