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김밥집 할머니 김선주

한주환 2018. 7. 25. 17:05

통인시장의 <할머니김밥> 집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5월의 두 번째 토요일에.. 찜질방을 다녀오셨다가 그냥 댁에 와서 입에 약간의 거품을 물더니 그냥 가셨다고 한다. 과로사라고 했다. 주문 김밥이 들어와 이틀 동안 잠도 못 주무시고 무리하게 김밥을 싼 것이 원인이었다. 향년 74세.


통인시장의 상권은 7,80% 할머니들이 쥐고 있는듯 하다. 빈대떡 김밥 반찬가게 야채가게등등.  
주로 3, 40년씩 같은 곳에서 장사를 하며 아이들 키우고 교육시키고 장성하여 결혼시켜서 다 내보낸 다음 어머니 일을 물려받거나 거들려는 자녀가 없으면 그냥 죽을 때 까지, 할머니들 표현에 따르면 '몸 꿈쩍거릴수 있을 때 까지' 는 장사를 계속하신다. 이 할머니가 유별난 것은 김밥을 싸는 솜씨가 남다른 점도 있지만 김밥을 싸고 썰어주면서 쉴 새 없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군시렁 군시렁 하는 점이다.




김밥을 싸는 솜씨는... 매우 느리다는 것이 특징이다. 김밥에 들어갈 야채를 일일이 살짝 데치거나 볶아서 꼭 짜서 빼들 빼들하게 만들어 갖가지 양념을 한다. 그리고 김 발을 펴놓고 밥을 꼭꼭 눌어 담는다. 얇게 펴면서 엉성한 구석이나 빈틈이 없도록 촘촘하고 고르게 여러 번 손질을 한다. 그 다음 숨 죽어서 뻣대지 않는 꼬솜한 오이 우엉 홍당무 등을 하나하나 밥에 파묻히도록 꼭꼭 눌려 담는다. 김밥을 말면서도 손가락에 힘을 주어서 중간에 한 번씩 눌러주고 가장자리도 여러 번 매만진다. 무슨 체인점이나 다른 김밥 집의 선수들이 세 개나 네 개를 쌀 때 한 개밖에 못 싼다. 할머니 김밥은 옆구리가 터지는 법도 없고 꼬투리에서 속이 빠져나가는 법이 없다. 이렇게 느리게 정성스레 김밥을 싸는 할머니가 이틀 동안 행사 김밥 주문을 받아서 밤새도록 김밥을 쌌다니... 과로가 안되었을 수 없다.




김밥을 싸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래서요... 어머나 ...어떻게 그랬지요 ...하고 물으면 천천히 아주 느리게 꼭 선 문답하는 것처럼 앞뒤 자르고 이리저리 인생 내력을 말씀하신다. 내가 충격을 받았던 이야기는 소위 낙태 수술을 아홉 번 했다는 대목이다. 그러고도 자녀는 2남 3녀인가 3남2녀인가를 두었다고 한다. 바깥 양반은 먼저 보낸 지 한참되었다는데 영감님 정력이 세종대왕만큼 절륜하셨던 모양이다. 할머니는 낙태 수술을 긁었다고 하셨다. 용산인가 후암동에 있는 의사를 꼭 찾아갔는데 그 의사가 명의여서 애 긁고 앰풀주사 한 대 맞고 하루 앓고 나면 깜쪽 같이 나아서 다시 시장에 나와 김밥을 말았다고 한다.


지금은 <할머니김밥>이라는 상호에 불이 꺼져 있고 바로 밑에 화살표로 딸이 하는 김밥집이 표시되어있었다. 딸의 손을 잡고 위로의 말을 전하고 김밥을 사왔다. 뭐라 자세한 이야기를 물을 수 없었다. 동네 소문을 들으려 시장안 목욕탕에 갔다. 찜통에 들어가서 할머니 김밥이... 이렇게 운만 떼었더니 여기저기서 이런 저런 소문을 이야기 해주었다. 할머니의 가족사며 할아버지가 두 집 살림한 적도 있다는 이야기 또 아들과 딸의 이야기 등...




김밥 할머니는 매번 "이렇게 해서 돈 얼마 못 벌어.. 남는게 없어" 말했지만 생전에 집도 두 채 장만하고 딸이 하는 김밥집 상가 자리도 할머니 명의로 되어있다고 했다. 그만 일 하라는데도 돈 욕심이 많아서 절대로 그만두지 않으셨다고 수근댔다. 딸이 만드는 김밥은 할머니 식과 보통 김밥짐 식이 절충된거라고나 할까 찰지고 쫀쫀하고 고소한 맛이 뒤에 까지 남지는 않았다.

목욕탕 여론은 할머니가 다른 복은 몰라도 죽는 복은 있었다로 돌아갔다. 김밥 하나만 수십년 말아서 자식들 공부 시키고 김밥 말다가 돌아가셨으니 죽는 복은 타고났다는 말이다. 한쪽에선 할머니가 남긴 집 두  채가 누구에게 갈까에 대해 이 말 저 말이 이어졌다.

일흔 넷이라는 나이가 나는 아까웠다. 내 어머니 세대라기 보다는 내 큰언니 세대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김밥 할머니의 이야기를 한번 써보고 싶었었다. 대한민국여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꼭 기록해야만 하는 낙태사를....소위 낙태 수술과 낙태 전문 의사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는..... 어렸을 때 친척 아주머니 가운데 제일 부자였던 분이 산부인과 의사였는데 주로 양 색시들 낙태 수술로 돈을 벌었다고 수근대던 기억도 나고... 나는 할머니가 팔십 몇살쯤 되었는줄 알았다. 다리를 질질 끌며 다니셨다. 그야말로 몸을 꿈저거렸다. 모르긴 몰라도 아이를 긁은 후유증이 아닐가 싶다.




우리 어머니들 , 그리고 우리 모두 , 또한 우리의 딸들... 아무도 낙태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 임신 자체가 축복이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은 아직 아니다. 경제적 육체적 사회적 정신적 사연이 각각 있다. 그 할머니도 계속해서 할아버지의 아이를 낳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홉 명이나..... 김밥을 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을 어딘가에 메모를 해놓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찾아지지 않았고 아홉의 낙태와 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는 사실, 나이든 의사를 명의중의 명의라고 했던 것만 기억난다.

이 동네와 시장, 그리고 목욕탕에서 만나는 90대 80대 할머니들의 사연이  저마다 기구절창해서 시간이 있으면 할머니들의 역사, 우리 어머니들의 역사를 채록해 보려 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젊은 할머니가 먼저 세상을 뜨셨다. 할머니 돌아가셨다는 소식 듣고 아연하고 쓸쓸하고 ....그냥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 김밥 말면서 할 일 다하면서 다른 곳은 바라보지도 않고 땅바닥을 딛고 꿈저거리며 자기자신을 돌보지 않으면서 주변 사람들을 살게 해주면서 ...그게 인생이다 싶어하며 살아낸... 보통이지만 위대한 우리들의 어머니, 한 여성의 삶이 착찹하게 마음을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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