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식의 특징을 설명하는 말 중에 흔한 것이 약식동원(藥食同原)이다. 전통 음식 관련 인사들의 명함에서도 흔히 '약선 요리'라는 단어를 보게 된다. 우리 조상은 지혜로워 먹는 것도 건강을 생각하고 먹었다는 둥 하는 잡설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조상들이 지혜로워서 조선 말 한민족의 평균 수명이 겨우 40세를 넘겼고 환갑 넘으면 천수라 하여 하늘 복을 타고 났다 하였나. 우스개로 늘 이런 말을 한다. "식당 벽에 쓰인 글만 잘 보고 다녀도 동의보감 뗀다." 어떻게 된 일인지, 한국인에게 약이 아닌 음식이 없다.
요즘은 방송만 잘 보아도 동의보감을 뗄 수 있다. 음식 프로그램마다 식품 영양학 교수, 한의사가 나와 "동의보감에 의하면.."을 읊는다. 방송에 나오는 요리사도 "이건 어디에 좋고" 하며 약장수 노릇을 하고 있는데, 이거 의료법 위반은 아닌지 따져야 할 것이다. 흔히 약식동원이라 하지만, 예전에는 의식동원(醫食同原)이라는 말이 주로 쓰였다. 애초 중국에서 만든 글이다. 음식을 질병에 따라 골라 먹으면 그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관념을 표현한 것이다. 본초학이 이 관념의 근원이고, 중의학과 한의학의 치료술은 많은 부분에서 이 본초학에 기대고 있다. 서양에도 이런 관념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허브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아로마테라피가 그것이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중반 즈음부터 의식동원이라는 말은 차츰 사라지고 약식동원이 득세를 하였다.의료 행위가 먹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반면 약은 대부분 입으로 먹으니 약식동원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생각한 결과일 것이다. 약식동원이라는 말이 한반도에서 왜 이리 강한 생명력을 얻고 있는지 인문사회학적 시각으로 따져 볼만한 주제인데, 음식 관련 학문을 한다는 사람들은 오직 기존의 약식동원 관념을 강화하고 확장하는 일만 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 음식을 세계 여러 음식과 차별화하는 전략으로 약식동원을 앞세우자고 주장하는데, 그러면 한국인 외 여느 세계인들은 독이라도 먹고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또, 약식동원의 그 음식을 먹는 한국인이 비슷한 경제 수준에 있는 국가의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과학적 통계라도 있는지 묻고 싶다. 한민족이 먼 조상 때부터 약식동원을 식생활에서의 한 신념으로 삼은 것이 분명하다 하여도, 이를 두고 조상의 지혜라 말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으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음식에 그 어떤 질병 치유의 효과가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만들고, 그 기대는 목숨을 걸 정도로 긴박한 것이어서 약식동원이라는 신념으로까지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근대화 이전 한반도에서의 의료 사정을 생각하면 위의 말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조선에서 의사는 귀한 존재였다. 한성에 사는 왕가와 일부 양반들이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 그 아랫것들은 진맥조차 꿈꾸지 못하였다. 지방에는 향의라고 하는 이들이 있기는 있었는데, 글 읽을 줄 하는 선비들이 이 노릇을 하였다. 그 얇은 본초학 서적 따위를 뒤적이며 이런저런 주먹구구의 처방을 하였다. 어의가 왕의 부스럼 하나 고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의료 수준인데, 향의가 병을 낫게 해줄 리가 없었다. 전염병이 돌면 떼죽음을 당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민중들은 어떻게든 자력으로 치료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질병이 곧 죽음'이었던 시대였으니 병이 났다 하면 세상에 떠도는 온갖 방편들이 시도되었다. 조선 말이나 일제 강점기에 이런 치료법을 적어놓은 책들을 보면, 다래끼 나면 눈썹 뽑아 돌 위에 놓고 누군가 차기를 기다려라 같은, 예전 할머니들에게서 많이 들었던, 그 정도의 주술적 치료법으로 채워져 있다. 그 중에 많은 내용이 현재도 민간요법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한국인 특유의 몬도가네 습생도 그 '전통' 안에 있다.
약식동원이라는 관념 역시 이 '전통' 안에 있는 것이라 나는 생각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근대 이후 서양에서 배워온 식품영양학적 지식까지 이 약식동원의 '전통'을 강화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이 원하는 딱 그 수준의 말을 해야 지위와 명예, 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는 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음식은 약이 아니다. 요리사는 의사가 아니다. 몸이 아프면 약을 먹고,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어야 한다. 이 간단한 구별도 하지 않으려 한다면, 한국 음식 문화의 미래는 어둡다. -- 황교익 푸디의 잔반에세이 중에서 민들레 꽃으로 차를 다려 마신다는 글을 보고 생각난 글입니다. 평균수명이 40세이던 조선시대 동의보감이 80세를 향해 가는 21세기 한국서 음식의 바이블처럼 인용하면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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