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위대한 남편 양정자

한주환 2018. 4. 26. 21:35




지난 밤 우리가

미친 짐승처럼

부끄러운 살의 장작불 활활 태운 그 이튿날




그대는 갑자기

안면 싹 바꾸려 한다

밥상에 반찬 시원치 않다

와이셔츠 단추가 떨어졌다

용돈이 너무 적다는 둥

목소리도 당당하게 위엄 떤다




지난 밤 흠신 짓눌리고 짓뭉개진

행복해진 그대 마누라

다시 한번 정신 나게 짓밟으려 한다

그지 없이 가련하고 귀엽도다

내 하나 뿐인 사내 그대여

내 겉으로는 그럴 때, 그대

가장 위대한 사내로 여겨주리라.'




박완서 선생 말문입니다.


양정자의 시집은 나를 슬그머니 매료시켰다. 

아, 이런 것들도 시가 될 수 있는 거로구나.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건강한 이 여편네 시인이 즐겨 다루는 건 빨래, 연탄 구멍, 발 고린내, 무말랭이, 보통의 아이들, 못나고 위대한 남편, 죽여주는 잠자리 등. 아주 구질구질하고 일상적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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