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쓴 글

7465 사랑

한주환 2018. 3. 8. 17:49




사촌들이 아직 십대일 때 외삼촌은 돌아가셨다.

사촌들은 장례를 어디서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도 모르고 조의금은 어떻게 정산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숙모 역시 충격 상태에 빠져있었기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한 사람의 손도 아쉬웠다. 별 도움 안되는 나라도 있어야 했다. 영안실을 수습하다 장례차를 놓친 까닭에, 벽제 가는 길은 시외버스를 타고 갔다. 십이월 벽제 가는 길은 몹시 추웠다.




벽제 가는 구파발 지하철을 타고 졸고 있는데, 육칠십대로 보이는 늙수그레한 아주머니가 턱이 젖도록 울고 있었다.

윤곽이 그다지 무너지지 않은 얼굴로 미루어 보건데, 어느 집 마나님으로 보였다.

지하철 역에서도 같이 내린 아주머니는 광탄방면 시외버스에서도 내 동행이 되었다. 





아주머니, 벽제 가세요? 손수건 혹시 필요하세요? 
- 고마워요 아가씨. 
나는 무심히 물었다. 어느 분이 돌아가셨어요? 
- 남편이라고 해야 하나... 남자친구라 해야 하나...재작년에 깨-끗한 영감님을 만났세요. 재벌 회사에서 하는 실버 타운에서 무슨 레크레이션인가 하다가 만났지요. 그 집은 아들이 너이고 (넷이고), 나는 아들 둘 딸 하나 두었지요. 살만큼 살다가 배우자 사별하고 만난 사람들이니 서로 간에 뭐 거리낄 게 있겠어요. 석 달만에 방을 같이 쓰자고 말이 나왔세요. 그런데 타운 관리소에서 하는 말이, 풍기 문란이 되니까 혼인신고를 해야 같은 집에서 살 수가 있다는 거예요. 




혼인신고를 하겠다고 가솔들에게 상의를 하니 하나같이 쌍수를 들고 반대해요. 우리 집이나 그 집이나 재산 분배 오와리거든 (끝이거든).  이제 와서 법률적으로 형제가 생기면 일이 너무 너무 복잡해진다는 거야. 아들이고 딸이고 도대체 길러봐야 소용이 없어요. 내가 그래도 부동산이 그럭저럭 있어요. 빌딩, 아파트 합치면 오 육십억은 될 거구, 영감님도 여기저기 고시텔이 있는 자산가야. 자식들한테 재산 남겨주는 게 보통 고등 수학이 아니거든. 너는 제사 받들 아들이니 몫아치에서 1.1을 곱하고, 너는 학비가 많이 들었으니 0.9를 곱한다, 그렇게 고심 고심해서 나눠 놨는데, 재산 나눌 형제들이 더 생긴다니 얘들로선 경천동지할 일인 거지.



생전 실버 타운에 오질 않던 애들이 손주 앞세우고 와서 시위를 해. 며느리들은 남 보기 부끄럽다 하고, 자식들은 연을 끊겠다 하고.  내가 화냥년이야? 남의 남자 뺏었어? ... 그래도 늙은 것이 어찌해. 매 주마다 못살게 구는데. 
그때부터 속 정 풀고 싶을 때면 운전해서 모텔을 갔다우.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면서도 재미는 있었어. 근데 영감님이 그렇게 갑자기 갈 줄 누가 알았겠어. 범같은 아들들이 와서 착착착 장례를 하는데, 나는 그냥 거기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야. 



여기까지 말하고 아주머니는 끄억하고 울었다. 
아... 아주머니 어떡해요. 그 분 많이 사랑하셨나 봐요.
- 아가씨 그게 아니야...내가 그것 때문에 우는 게 아니야... 네? 
- 내가 그 사람 이름이 기억이 안나... 맨날 조 영감님이라고 불렀지 이름을 다 불렀어야지.
아침에 집에서 나왔을 때는 그래도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 
이 나이가 되니까 살 섞은 남자 이름도 석 자가 다 기억 안나...

실제 있었던 얘기다. 74세, 65세..
돈 많이 모으지 말고, 자식 믿지 말라는 얘긴가 한다. 그치? 


딱 저럴 때 쟈스퍼 갔었습니다. Maligne호수 크루즈 타러.. 암 것도 안 보여 포기..
올해 쟈스퍼만 재도전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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