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깎기 시작한 건 회사 취직하고니 40년 넘었다. 이발소는 면도사가 이상한 짓을 해서 발을 끊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미용실은 길동인데 처자식을 교회에 데려다 주고 예배시간에 할 짓이 없어 갔다.
크고 날씬한 미용사가 머리깍는 내내 날씨부터 점잖고 품위있는 말을 했다. 이 미용사가 그만둘 때까지 몇년을 다녔는데 지금은 미용실 이름이 달라졌다. 그 다음에 과음한 다음날 회사근처 사우나에 가서 땀 빼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짤랐다.
사우나에 면도사는 없고 싸도 속옷 바람에 깎기가 싫어서였다. 그렇게 살다가 이민와서는 집에서 깎았다.
공주에서 집 지을때 미용실이 없어서 다리 옆길에 있는 이발소에 갔는데 주인이 옛날 장안평에서 면도사 5명을 거느리고 이발소를 했다고 자랑을 한다.
다신 안 가고 일요일 천안 빨래방에서 빨래, 건조하는 동안 인근 미용실에 갔다.
돌아와선 집에서 미용하는 곳에 가다가 미용사가 유방암으로 죽어서 부득이 근처 미용실로 간다.
인근에 한인 미용실이 3개, 백인 2개나 있는데 제일 싼 곳으로 가다가 코로나로 모두 요금이 많이 올랐는데 포기하고 가던 곳으로 간다.
개인 $15, 코로나 전 $19, 지금 $24 이니 엄청 올랐다. 하기야 주인이 3번 바뀌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