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結초보恩 방윤후

한주환 2021. 7. 25. 11:26

신호등 빨간불 맞춰 차들이 횡단보도 흰 선 뒤에 멈춰 있다

結초보恩,

이 은혜는 꼭 나중에 다른 초보 분께 갚도록 하겠습니다

자동차 뒤창에 붙어 있는 글귀가 선명하다

 

모든 초보에게 은혜가 있다니

입가 미소에 농도가 짙어진다

 

어쩌면 가로수는 구름에게 빚지고

구름은 태양에게 빚졌던 걸까

횡단보도 안전하게 건넌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은혜를 갚는 일일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는 사이

 

아버지는 생전에 내게 묻곤 했다

키워 주고 가르쳐 주니 나한데 빚진 것 언제 갚을래?

커서 다 갚을 게요, 양손을 크게 벌린

어린 딸을 흐뭇하게 내다보듯,

이제 막 출발할 저 차에게도

순순한 길이 이어질까

 

도시에 빌딩들은 길을 헤아려

조금씩 비껴서고

고층에 가린 그늘에도 햇살이

머물다 갈 사랑이 있을 것이다

 

초보로서 책임을 다하면 진 빚은 이월된다

첫 차를 갖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가불하는 것이므로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뀌자

풀을 묶은 올가미 같은 햇무리에서

엔진 소리가 난다, 잘 가라

結초보恩,

초보를 뗀지는 32년이 넘었다. 내가 산 차들이다. 시가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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