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쓴 글

38선이 생긴 이율

한주환 2021. 2. 21. 11:49

다시 배웠다.

 

전환시대의 논리다. 맥아더사령부의 미국 대령이 38선을 나누었다고,

북한에서 온 탈북한 구역식구가 얘기해더라.

 

남한 진보들이 2차대전의 패전국이 아닌 한국이 분단된 것은 소련의 태평양 진출을 봉쇄한 미국 책임이라고 한다면서  본인은 북한에서 일제시대 조선 외교사를 공부했는데 배운 내용이라고.

일본이 관동군(만주국 군대) 관할을 38선 위 북한까지 내리면서, 얄타, 포츠담 회담에서 승전국끼리 합의사항이 자동 변경된 것이었다.  1945년 5월 8일, 독일이 패망하자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있던 일본은 소련의 참전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소련의 대일본전 참전시 소련군을 방어할 만주군과 한반도내의 군편제를 재편하게 된다. 한반도 북단이 소련 국경과 맞닿아 있는 상황에서 한-소 국경지역으로 공격하는 소련군을 누가 맡을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관동군이 소련군을 담당하고 한반도내 제17방면군(조선군)이 일본 대본영군 직할로 미군을 담당한다면 한반도 북부인 한-소 국경지역에 군사적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되자, 5월 30일 일본은 한반도를 38선을 경계로 남부와 북부로 나누어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반도 북부는 관동군 제34군 관할로 하고, 한반도 남부는 제17방면군이 맡아 계속 일본군 관할로 한다는 군제 재편을 한 것이다.

이러한 재편으로 만주국 관동군 관할지역이 얄탸(Yalta)회담 때와는 다르게 한반도 북부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정학적 결과에 따른 일본군 편제의 재편으로 스탈린이 한반도 북부까지 점령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받게 되었던 것이다. 1945년 7월 제2차대전 종전 약 20여일 전에 열렸던 포츠담(Potsdam)회담에서 한반도 북부지역의 관동군 제34군 관할은 이미 함경남북도와 평안남북도로 결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얄타회담을 이은 포츠담회담에서 트루먼, 처칠과 스탈린의 합의에 따라 만주군 관할지역은 소련군이 점령하고 일본군 관할지역은 미군이 점령하여 무장을 해제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짐에 따라 한반도는 북부(평안도 및 함경도)와 남부로 분할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졌던 것이다.

 

조선군이 주둔했던 용산에 미8군이 주둔했었다. 그래서 친일파가 득세한 한국이 되었다.

이영희도 틀렸다. 죽었어도 비판은 받아야 한다. 

미국이 주도한 38선이 아니고 미영중소 4국이 동의하고 일본이 변경해서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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