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일급수에 살던 물고기도 아니고,
오염에 저항하다 죽은 물고기도 아닌 채,
5급수 탁류 속에서 허리가 휜 채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저희도 기형으로 살아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저희도 그 물 속에서 몸을 보전하고 시를 놓지 않고 살아오는 동안 참으로 힘들었던 게 사실입니다.그래서 두 가지 길 중 어느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습니다. 충실하지 못하였다는 것이 더 맞겠지요.시인의 길과 민주화운동 하는 삶, 두 길 모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습니다.
5급수 탁류 속에서 허리가 휜 채 살아있는 물고기 처럼...
사람들은 제게 시인의 이미지와 투사의 이미지가 함께 있는 게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합니다. 서정적인 시인의 이미지로만 저를 보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가 하면 운동권 후배 중에는 “아직도 시를 쓰세요?” 하고 묻는 이가 있어서 제가 더 놀라기도 했습니다. 후배들에게는 내가 전혀 시인처럼 보이지 않았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이런 크고 거창한(?) 일을 하며 아직도 시 같은 것에 매달려 있느냐고 묻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맑은 시를 쓰는 시인이 어떻게 전교조 지부장을 하고 감옥에 끌려가고 거리에서 집회를 이끌고 민주화운동을 하는지 혼란스럽다고 말하는 소리도 듣습니다. 반대로 그렇게 조직적이고 투쟁적인 일을 도모하면서 어떻게 이런 여리고 부드러운 시를 쓸 수 있느냐는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그들의 생각이 맞습니다. 그 두 가지를 아우르며 양쪽 일을 잘 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두 가지는 서로 모순됩니다. 둘 중의 하나는 진정성이 결여되었거나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분들이 납득하고 이해할 만한 대답을 잘 찾지 못합니다. 저는 그저 “저같이 여리고 약한 사람도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살았던 거지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그러면 그 말에 수긍을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된 대답을 들었다는 표정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투사로 살았다면 적어도 김남주 시인처럼 살면서 시도 확실하게 쓰거나, 여린 시인으로 살았다면 박용래, 천상병, 이성선 시인처럼 살았거나 아니면 시를 그만두거나 했어야 독자들이 혼란스럽지 않았을 겁니다.
가슴을 붙잡은 말이다.
한국에서의 내 삶을 적확하게 잡아낸 글이다.
투사도 아니고 열사도 아닌 범부로 살았는데도
타의로 직장에서 내몰리고, 일용직으로 헤매다 이민을 떠난..
도종환 선생글은 참 빼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