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탄일 곽재구

한주환 2018. 12. 25. 10:25



그 고독한 탄일에 양 떼 들은 당신의 옛 주인이 이 땅 위에 태어났음을 잊고 있었다 




그 고독한 탄일에 흰 눈은 내리고 눈사람을 만들며 

아이들은 세상의 큰 함지박에 쌓이는 새하얀 쌀과

식구들의 바가지에 채워진 보리 쌀을 생각했다 




그 고독한 탄일에 사람들은 두 마리의 생선과 다섯 개의 보리 떡을 꿈꾸었고 

배고픈 양들을 위해 하루 한 끼를 굶어 본 일이 없는 예배소의 주인이 

배고픈 양들은 내 게로 오라 얘기했으며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탄일 트리에 달린 조그만 꼬마 전구들이 셀 수 없이 깜박거렸다 


유향과 황금과 몰약을 들고 박사들은 동방에서 찾아오지 않았고 

예배소의 양떼들은 예배 후에 황금과 지갑을 바쳤다 

아무도 양 떼 들이 바친 황금의 누런 때를 탓하지 않았고 




지갑을 바치고 돌아오는 양 떼 들의 귀갓길에 내민 거지의 큰 손에는 

온 밤 내 하염 없이 송이 눈만 쌓였다

 

그 고독한 탄일에 배부른 예배소의 주인은 세 번이 아닌 서른 번도 넘게 

제 옛 주인을 모른다 말하였음을 생각하지 않았고 



그 고독한 탄일에 양 떼 들은 내내 춥고 쓸쓸하였으며 

헐벗은 나무와도 같이 눈 발 속에 파묻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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