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들은 얼마나 자주 비 오기 전 쪽방촌을 찾았는가.
사제들은 얼마나 자주 폭염이 오기 전 반지하를 찾았는가.
수도자들은 얼마나 자주 홀몸노인과 노숙인 곁에서 함께 땀을 흘렸는가.

우리는 성당을 짓는 일에는 익숙했지만, 가난한 이들의 집을 살피는 일에는 둔감해지지 않았는가. 교회의 일도 이제 모두 어설픈 행정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우리는 강론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말했지만, 실제로는 편안한 회의실과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가난을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았는가.
교회는 원래 사후처리 기관이 아니었다. 상처가 생긴 뒤 위로하는 공동체에만 머물지 않았다. 아픔이 오기 전에 곁에 있는 공동체였다.
오늘 쪽방촌 골목에서 우리가 본 것은 단순한 현장 방문이 아니다. 그것은 교회를 향한 질문이다. 누가 가장 낮은 곳을 먼저 기억하는가.
누가 가장 작은 이들의 이름을 부르는가. 누가 가장 어려운 이들을 자기 발로 찾아가는가.
우리는 정치를 칭찬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성찰해야 한다.
쪽방촌 가난한 이들이 "우리 동네에 처음으로 누군가 와주었다"고 말하는 순간, 교회는 이미 오래전 그 자리를 비워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천주교 평화연대에서 쓰레드에 올린 글이다. 성당은 반성도 하는데 이번 서울가는 고속버스에서 본 개독교 성전이다. 개목들에게 쪽방촌은 아냐고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