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

경복궁을 가니

한주환 2018. 1. 22. 22:51

자재 통관을 기다리다 경복궁을 들렀다.

자주 갔던 때는 삼청동서 하숙하던 재수생 시절이었다. 그리고 대학때 박물관앞 다원에 몇번 갔었다. 이게 생각나더라.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김수영

저 왕궁대신에 왕궁의 음탕대신에
오십원 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 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예전에 통제구역이던 60경비단이 사용하던 군사시설을 철거되어 빈터가 많았다.

일본 애들이 왕궁을 뜯어 일본으로 가져갔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야말로 경희궁을 동물원으로 만든 만큼 경복궁도 난도질을 했다는 걸 알았다.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근정전, 경회루만 보던 옛날보다 넓어 좋긴 좋더라만.

근대화가 시급했던 그 때 쇄국을 택하면서 이런 궁전을 지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더라.

그 결과 일본이 뜯어가 만신창이가 되었다.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 수용소의 제십사야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테이블쏘도 없던 시절에 끌로 45도 경사면을 깎아내었다. 대단하다.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 해도 조금 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 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 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연꽃 위에 올린 난간도 눈에 쏙 들어오더라. 손재주 정말 Good job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 쟁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 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원 때문에 십원때문에 일원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일원때문에



미터쏘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다이아몬드형 문살을 깎았을까


모래야 나는 얼만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만큼 적으냐
정말 얼만큼 적으냐...


중앙청을 헐었을 때는 몰랐다. 이렇게 왕궁에 개판을 쳤는지...

나라가 없어지면 이렇게 되는구나 싶다.